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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때 소들이 걱정하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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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몇 년 전 8월 말에 어느 지방에 다니러 갔다가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그 전해 그맘때쯤 그 지역은 국지성 호우로 엄청난 수해를 당했다. 단군 이래 최대의 비, 최대의 피해라고 했는데 양쪽 귀뺨을 때리듯 산을 사이에 두고 동쪽 서쪽에서 비가 퍼부었다는 것이었다. 그때 내가 아는 사람의 목장에서 키우던 소 수십 마리가 떠내려갔다. 중간에 헤엄을 쳐서 빠져나온 소도 있었지만 하류까지 근 삼백 리나 떠내려간 소도 두 마리나 되었다.

강폭이 넓어지고 유속이 느려진 하류에서 그 소를 '주운' 어떤 사람이 소의 귀에 달린 표시를 보고 연락을 해와 목장 주인은 트럭을 몰고 비가 채 그치지 않은 길을 허위단심 달려갔다. 막상 소가 있는 곳에 도착하자 소를 주운 사람은 강에서 소를 끄집어내는 데 품이 적잖게 들었다면서 대가를 요구했다. 그 비용은 다 큰 소 한 마리 값에 자기 나름의 수고비를 더한 값이었다. 소 주인은 어이가 없어 하늘을 한참 바라보다가, 수백 리 길을 떠내려 오며 주인을 원망했을 소를 바라보다가, 상처투성이에 허기진 눈을 하고 목메어 우는 소를 보고 또 보다가, 당신들 마음대로 하라, 앞으로 그렇게 돈 많이 벌라고 버럭버럭 소리를 지른 뒤 그냥 와버렸다고 한다. 그 소를 데리고 와봐야 곧 죽거나 제대로 크지 못하고 약값만 들 것이라고 했다. 그 뒤로 그는 거기 두고 온 소들의 울음소리를 꿈속에서 몇 번 들었다.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곳은 산 아래에 있는 어느 음식점이었다. 음식점 주인은 당시에 자신의 집도 계곡물이 범람하는 바람에 식구들이 간신히 몸만 빠져나왔다면서 우리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음식점 위쪽에 있던 밭과 과수원도 모두 피해를 보았다. 산 중턱 곳곳에 전에 못 보던 낭떠러지가 생겨나 있었고, 밭이며 과수원 때문에 생긴 길이며 다리는 흔적도 없이 떠내려갔다.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중앙정부에서 그 지역 지방자치단체의 한 해 예산을 훨씬 넘는 지원금이 내려왔고, 그 바람에 수백 개의 건설사가 마구잡이로 세워졌다.

다시 큰비가 오기 전에 공사를 서둘렀는지 곳곳에 공사를 한 흔적이 있었고 장비도 치워지지 않고 있었다. 계곡 양쪽에는 계곡 바닥에 있던 바위로 거창한 축대를 쌓고 콘크리트 옹벽을 쳤으며 돌을 그러모아 쇠줄로 얽어매 놓은 것이 겉보기에는 성벽처럼 튼튼해 보였다. 바닥은 중장비로 긁고 다져서 평평하게 해놓았다. 그런데 음식점 주인이 불쑥 이런 말을 했다.

"계곡을 복구한다고 해싸면서 이리 굽고 저리 굽은 계곡을 직선으로 쭉쭉 펴놨다고. 다시 그런 비가 오면 중간에 걸릴 거도 없으니 그냥 쳐들어올 기구마는. 요새는 밤에 소나기만 쪼매 와도 무서워서 잠을 못 자."

자연상태의 계곡물은 꺾이고 돌고 바위에 부딪치며 힘이 분산되게 되어 있다. 자연히 피해도 분산된다. 공사를 발주한 사람이나 공사를 하는 사람들 눈에 뭔가 큰 일을 한 것처럼 보이게 거창한 축대를 쌓고, 또는 공사하기 편하게 직선으로 만들면 다시 원상태로 되돌릴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절대로, 절대로, 적어도 그렇게 공사를 해대는 사람들, 우리의 수준으로 결코 할 수 없다. 우리가 없애버린 그 수많은 물고기의 집, 아니 물고기 하나 잡초 하나를 우리가 도로 만들어낼 수 없는 것처럼. 성벽 같은 축대가 아니라 철옹성을 쌓아도 자연의 힘 앞에 무너질 수밖에 없게 되어 있다.

자연의 질서인 곡선과 구석, 그늘을 없애고 직선, 중앙, 효율을 좇아 영원히 되돌릴 수 없이 만들어버리는 게 어디 수해복구에서만 그럴 것인가. 다시 똑같은 큰비가 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 수해를 경험해본 소들도 모두 마찬가지겠지만.

성석제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