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순위 후보 청와대 올리면 순위 뒤집히는 경우 숱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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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지난해 9월 문화체육관광부 노모 체육국장과 진모 체육정책과장의 교체 인사뿐 아니라 문체부 인사 전반에 걸쳐 국·과장 선까지 일일이 개입했다는 주장이 문체부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이는 “유진룡 전 장관이 (함께) 일할 수 있는 (체육국·과장)적임자로 인사조치를 한 것”이라며 개입 의혹을 차단하려 한 청와대의 5일 해명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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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명을 요구한 문체부 공무원 A씨는 6일 전화통화에서 “장관이 전체적인 부의 운영을 염두에 두고 원하는 그림에 따라 올린 국·과장 인사안이 청와대에서 뒤집혀 내려오는 경우가 이미 지난해부터 허다했다”고 주장했다. “통상 1·2·3 순위 후보를 정해 국·실장 인사안을 올리면 2·3위는 들러리일 뿐 실제로는 1순위 후보를 쓰고 싶다는 뜻인데 2순위 후보가 임명돼 내려오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지난해 4월 문체부의 문화콘텐츠산업실장·국립중앙도서관장 인사를 언급했다. 두 자리는 모두 1급 보직이다. 당초 유 장관은 신모 당시 관광산업국장을 문화콘텐츠산업실장으로, 노 체육국장을 국립중앙도서관장으로 쓰고 싶어 했다고 한다. 하지만 1순위가 아니었던 원용기 현 문화예술정책실장과 임원선 현 도서관장이 각각 그 자리에 임명됐다. 원 실장은 문체부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의 한양대 동문이다.

 A씨는 “당시 문체부 공무원들은 문체부 출신으로 내부 사정을 잘 아는 모철민 당시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이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한 게 아닌가 의심했다”고 말했다. 알고 보니 모 수석의 ‘작품’이 아니어서 당혹스러웠다는 얘기다. A씨는 또 “그 같은 인사 뒤바꾸기는 지난해 상반기 문체부에서만 벌어진 게 아니었다. 국무조정실·기획재정부 등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어 공무원 사회 전체가 혼란스러워했고 연장선상에서 청와대가 관료 길들이기를 하려 한다는 말도 돌았다”고 했다.

 A씨는 “지난해 9월 노 체육국장 등이 교체된 배경도 최근 불거진 정윤회씨 관련 의혹을 보고서야 의문이 풀렸다”고 주장했다. A씨에 따르면 대개 승마협회처럼 비교적 작은 체육단체가 관련된 문제는 문체부 과장이 직접 조사하지 않는다. 하지만 “조사 당시 정윤회라는 인물이 민원인이라는 사실이 알려져 체육과장과 감사관이 직접 현장 조사를 했다”고 한다. 당시 문체부 공무원들은 청와대 지시 사항을 승마협회의 근본적인 문제를 조사해 개선 방안을 올리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래서 정윤회씨 측 주장은 물론 반대편 주장까지 조사해 중립적인 내용의 보고서를 올렸다는 것이다. A씨는 “이번 언론 보도를 보니 차라리 정윤회씨 측 얘기만 듣고 보고서를 올렸어야 하는데 그 이유를 모르다 보니 결국 국·과장이 교체됐다 ”고 전했다.

 문체부에서는 지난 10월 1급 세 명이 옷을 벗었다. 이에 대해 전임 유 장관의 색깔 지우기 차원이 아니라 8월 취임한 김종덕 장관이 조직 장악을 위해 취한 자연스러운 인사라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A씨는 “문체부 인사의 배경에는 뭔가 실체는 분명히 있는 것 같다. 다만 그게 누구인지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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