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안정책'에도 집값은 오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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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정부가 강도높은 부동산 투기억제책을 내놓고 있지만 서울과 수도권 아파트 시장의 불안은 심화하고 있다. 집값 안정책이 단기효과에 그칠 뿐 시장을 휘어잡지 못해 가격만 올리는 역효과를 낳고 있는 것이다.

금리.교육환경.인구구조 등 부동산을 둘러싼 환경이 1980~90년대와는 크게 다른데도 과거 처방을 답습, 약발이 먹혀들지 않고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특히 기존 집값 상승의 악순환을 불러일으키는 분양가에 대한 이렇다 할 통제장치가 없는 것도 정부대책이 겉도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중앙일보조인스랜드와 텐커뮤니티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월 이후 나온 여섯차례의 굵직한 집값 안정책에도 불구하고 이 기간 중 서울지역 아파트 값은 평균 29%나 올랐다.

특히 지난달 말 서울 강남구와 경기도 광명시를 투기지역으로 지정한 이후 이 일대 아파트 호가는 최고 5천만원이나 급등했다. 매도자들이 양도소득세 부담을 피해 매물을 거둬들이거나 세금 부담만큼 호가를 올려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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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물이 별로 없다 보니 2~3개의 매물이 시세를 결정하는 가격 왜곡 현상까지 빚어지고 있다. 게다가 7일 청약접수한 서울 도곡동 주공 1차가 평당 최고 1천8백만원의 높은 분양가에도 평균 4백30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자 인근 아파트 값도 덩달아 오르고 있다.

◇안 잡히는 강남 재건축 아파트 값=강남구 개포동 주공 1단지 13평형은 투기지역 지정 전에는 3억9천5백만~4억원에 거래됐으나 지금은 4억1천만~4억2천만원으로 최고 2천만원 올랐다. 대치동 은마 34평형은 6억2천만~6억4천만원으로 1천만원 이상, 대치동 미도 1차 67평형도 14억원으로 5천만원 급등했다.

대치동 석사부동산 김선옥 사장은 "사려는 사람은 많은데 매물이 없다 보니 가격 절충은 엄두도 못내고 매도자가 부르는 값에 거래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아파트값 오름세는 서초.송파구 등 인근으로 번지고 있다. 잠실 저밀도지구 아파트 값은 최근 일주일 새 2천만~3천만원 올라 잠실시영 13평형(신동)은 3억8천만원을 호가한다.

잠실동 에덴공인 김치순 사장은 "도곡주공 1차가 높은 분양가에도 청약 과열이 빚어졌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잠실지구의 일반 분양가도 올라가 수익성이 좋아질 것으로 기대한 집주인들이 호가를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통화당국이 경기부양을 위해 최근 콜금리 인하를 시사한 것도 매물난을 부추긴 요인이라고 부동산 전문가들은 전한다.

삼성경제연구소 박재룡 수석연구원은 "콜금리를 낮출 정도로 실물경기가 얼어붙은 상황에서 내수의 버팀목인 부동산시장을 죽일 수 없는 정부의 고민을 투자자들이 너무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광명.대전도 약발 안 먹혀=경기도 광명 일대에는 투기지역 지정 후 투기세력이 더 기승을 부리고 있다.

철산동 L공인 李모 사장은 "한 컨설팅회사에서 회원 10여명을 데려와 그나마 남아 있던 물건을 싹쓸이해갔다"며 "결과적으로 투기지역 지정이 이 지역을 투자유망 지역으로 홍보한 셈이 됐다"고 말했다.

대전시 서구와 유성구는 정부가 지난 2월 투기지역으로 지정한 데 이어 최근엔 투기과열지구로 묶었는데도 아파트와 분양권 값이 오름세다.

서구 둔산동 M공인 관계자는 "정부가 단기 처방을 남발하다 보니 강한 내성이 생겨 어지간한 대책으론 시장이 꿈쩍도 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책은 달라진 시장환경에 맞춰야=정부가 지난해부터 잇따라 내놓은 수요억제 위주의 땜질식 정책이 한계점에 이른 게 아니냐는 지적이 많다.

내집마련정보사 김영진 사장은 "투기지역 지정 등 수요억제 처방은 일시적으로 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으나 부동산값 상승 기대 심리가 여전한 시장구조에서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메리츠증권 부동산금융팀 안홍빈 차장은 "분양가 억제대책 없이는 부동산시장이 안정되기 어렵다"며 "분양가 물가연동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건국대 부동산학과 조주현 교수는 "1가구 1주택자를 제외한 투자수요에 대해선 보유세를 대폭 올려 집값 안정 의지를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며 "행정수도 충청권 이전도 서둘러야 한다"고 주문했다.

박원갑.서미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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