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미·일의 반도체개발 경쟁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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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보다 작게, 보다 많이, 보다 적게, 보다 빠르게-.
언뜻 보아 전국체전 표어 같은 이 내용은 반도체 산업이 추구하고 있는, 궁극적인 목표를 함축시긴 것이다.
회로를 수용하는 반도체 칩의 크기는 가능한 한 작게 만들고, 그 대신 집어넣는 소자의 수는 극대화시켜 보자는 것이다. 또 가격과 전력소모·오류는 최소한으로, 칩의 기동성은 최대한으로 빠르게 하자는 내용이다.
l95l년 최초로 제작된 컴퓨터 에니아크와 현대의 반도체를 비교해보면 이런 주장이 쉽게 이해된다. l만8천 개의 진공관, 7만개의 저항, 1만개의 콘덴서와 회로로 구성된 에니아크는 50평이나 차지하는 크기였고 무게는 30t, 계산에 소요되는 시간 25∼30분, 소비전력 1백kw였다.
오늘날 2만개의 소자를 갖는 1개의 칩의 크기라면 사방이 5mm 배선까지를 다해보아도 한쪽이 수cm를 넘지 않는다. 무게는 10g이내며 소요전력은 lW를 넘지 않는다. 2만개의 소자라는 것도 에니아크와 비슷하게 하기 위한 것일 뿐 같은 크기의 칩속에는 수십만 소자까지룰 넣을 수 있어 1개의 칩이 수십 대의 에니아크를 대신할 수 있다. 컴퓨터속에서의 연산속도도 피코초(l조분의1초)단위에까지 이르고있어 30분이 걸리던 에니아크와는 비교가 안된다.
이것을 숫자로 비교해보면 30년만에 면적은 6백m만분의 1, 무게는 3백만분의 1, 소비전력은 14만분의 1로 줄었으며 작동속도는 수백조분의 l초로 빨라진 셈이다.
61년 실용화된 IC의 초기기억소자는 l개칩에 20개가 들어있었다. 그것이 73년에는 같은 크기안에 4천개, 76년에는 1만6천개, 78년에는 6만4천개, 81년에는 25만6천개를 넣을 수 있게 됐으며 84년까지는 l백만개를 넣을 수 있는 수준에 와있다.
이처럼「보다 작게·보다 많이」의 기술진전은 기억시킬 수 있는 정보량에서 대략 3년마다 4배씩 늘어나는 경향이다. 반대로 기억용량에 따른 가격은 상대적으로 떨어지고 있다. 74년 반도체 칩에 들어있는 1개 기억용량의 가격을 1로 볼 때 77년에는 0·25, 80년에는 0·06이었고 83년에는 0·015로 예상된다. 이는 가격이 3년마다 4분의 l로 싸지는 것으로 전체적으로 볼 때 3년마다 16분의l로 「보다 적게」가 실현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반도체산업의 기술경쟁도 자연 이런 목표를 놓고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일본이 기억소자에서 미국과 대등한 위치에 이른 것도 이 축소화기술을 개발했기 때문이다.
64K비트의 기억용량을 갖는 칩을 만들자면 사방 5mm정도가 되는 실리콘 판 위에 가로·세로로 무려 8백만에 이르는 회로 선이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선폭은 4미크론(1미크론은 1천분의lmm)이하로 가늘어 질 수밖에 없다.
최근 일본은 회로를 만드는 전광용 빛을 자외선에서 전자빔이나 X선으로 바꿔줌으로써 회로의 선폭을 1미크론 내지 0·5미크론으로 줄여 줄 수 있는 길을 열었다.
1메가비트 (1백만비트) 의 기억소자를 넣어주려면 l미크론 이하의 전광기술이 선결요건이 된다.
이런 기술개발에 힘입어 요즘의 주종상품인 일본제 64K기억용 소자는 미국시장에서 70%의 시장점유율을 보이면서 판매량을 늘려나가고 있다.
그러나 미국도 좌시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미국은 기억소자에서 2백56K비트, 1백만비트 등 일본을 압도하기 위한 추격전을 벌이는 한편. 지금까지 우위를 차지했던 논리소자에서 선두를 고수하고 있다.
반도체 집에는 집어넣는 글자를 기억하는 기억소자와 이 기억을 토대로 분석하고 이용하는 프러세서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일본은 지금까지 비교적 손쉬운 기억소자에서 미국을 따라잡았지만 인공지능에 비유되는 프러세서에서는 뒤져있는 것이 사실이다.
미국은 이 분야에서 일본을 멀찌감치 따돌리기 위해 모터롤러, 벨연구소 등이 중심이 되어 16비트 프러세서를 개발해냈다.
요즘 미·일의 경쟁운 기억소자에서 팽팽한 대결, 논리소자에서 일본의 추격이 시작된 단계라고 볼 수 있다.

<최정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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