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사 자사주 보유 사상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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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상장기업들이 갖고 있는 자사주식이 크게 늘고 있다. 주가 관리 카드로 자사주 취득을 활용하는 기업들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사주 매입이 주가 상승에 반드시 긍정적인 효과만 주는건 아니라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사상최대 규모로 늘어난 자사주=증권거래소는 상장사 중 3백14개사가 지난 6일 기준으로 총 7억1천만주의 자사주를 보유 중인 것으로 집계됐다고 8일 밝혔다.

금액으로는 15조5천억원어치다. 지난해 말 13조6천억원어치(2백97개사)보다 13% 늘었고, 지난 2001년 말(8조2천억원)과 비교하면 89%나 급증했다.

한국증권연구원 정윤모 연구위원은 "시장에서 유통되는 주식수를 줄여 주가를 띄우는게 주된 목적"이라며 "기업가치보다 주가가 낮다고 판단한 기업들이 주주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나섰다는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자사주가 증시 수급에 미치는 영향력도 커지고 있다. 자사주가 전체 시가총액(2백49조원)서 차지하는 비중은 6.23%에 이른다. 2001년 말 비중은 3.21%였다.

최근 자사주매입이 늘어난 것은 상장사들의 돈주머니가 제법 넉넉해졌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대개 이익금에서 배당금 등을 뺀 돈으로 자사주를 산다. 4백52개 상장사들은 지난해 사상 최대의 실적을 밑천으로 30조원(전년대비 27% 증가)에 이르는 현금성자산을 갖고 있다.

저금리로 투자할 곳이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증시가 계속 침체할 경우 기업들이 자사주 매입에 자금을 추가 투입할 가능성이 크다.

◇증시에 약될까=자사주 매입은 주가 안정, 경영권 방어, 스톡옵션 대비, 현금보유능력 홍보 등 다목적 카드로 활용된다. 특히 '자사주 매입=주가상승'으로 받아들이는 투자자들이 많다.

그러나 자사주 매입의 약효가 크지 않거나 주가가 반짝상승에 그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삼성전자는 지난 3월 중순부터 한달간 보통주 3백10만주 등 1조원어치의 자사주를 사들였으나 이 기간 중 주가는 0.52% 오르는데 그쳤다. 같은기간 중 종합주가지수는 1.06% 가량 올랐다.

지난해 자사주를 새로 취득한 41개사 중 68%는 평가손실을 입은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한화증권 이종우 리서치센터장은 "자사주를 매입한다는 공시를 한 뒤 중간에 흐지부지하는 회사나 매입기간을 질질 끄는 업체들은 시장에 도움이 안된다"고 지적했다.

또 자사주 매입이 주가상승으로 이어지려면 사들인 주식을 완전히 태워 없애는 '이익소각'이 이뤄져 유통물량이 줄고, 주당순이익(순익/주식수)이 높아져야 하는데 이런 기업들은 많지 않다.

올들어 자사주를 소각한 상장사는 11개로 자사주 보유 회사의 3%에 그쳤다. 대부분은 자사주를 사서 그냥 갖고 있는 것이다.

다만 현재 주가가 낮기 때문에 기업들이 보유 자사주를 팔아 시장에 물량압박을 줄 가능성은 낮다는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KTB자산운용 장인환 사장은 "회사 사정에 정통한 경영진 등이 자사주를 쌀 때 사서 비쌀 때 파는 것은 '내부자 거래'라는 오해를 부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일부 코스닥 업체들의 경우 자사주 취득 공시를 낸 뒤 대주주가 보유지분을 팔곤 해 재테크 수단으로 악용한 것 아니냐는 눈총를 받기도 했다.

한편 SK㈜에 대한 소버린자산운용의 적대적 인수합병(M&A) 가능성이 불거진 지난달 3일 이후 신규 자사주취득 건수는 37건으로 연초 이후 1백61건의 22%로 평소 수준에 그쳤다. 경영권 방어를 위해 자사주매입에 적극 나선 회사는 많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김준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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