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문화 데이트 하시겠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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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한 라디오 프로그램이 있다. 음악보단 출연진들의 얘기가 위주다. 언뜻 들으면 요즘 흔하디 흔한 연예인들의 신변 잡기를 풀어놓는 청소년 대상 프로그램이 아닐까 싶다. 근데 오가는 얘기가 범상치 않다. 문화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묻자 세상과의 소통이라는 답변이 들린다. 이래서 과연 누가 듣겠느냐는 의문이 든다. 그런데 진행자가 가수 한영애(사진)라는 걸 아는 순간, 고개가 끄떡여진다.

EBS FM '한영애의 문화 한 페이지'(104.5MHz.오전 9시.연출 문영주)가 26일로 3주년이 된다. 24일 EBS 방송센터 스튜디오에서 한씨를 만났다. 청재킷에 찢어진 청바지 차림. 활기차고 역동적으로 보였다. '누구 없소'로 연상되는, 다소 어두운 블루스의 이미지는 쉽게 찾을 수 없었다. 방송 3주년에 대한 소감을 묻자 그녀는 빙긋 웃었다. "덕분에 완전히 아침형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었죠."

프로그램 이름처럼 '문화 한 페이지'는 문화에 대한 모든 것을 다룬다. 공연.영화.문학.음악 등 각 장르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때론 짭짤한 정보를, 때론 문화에 대한 깊이 있는 안목을 청취자에게 전해준다. 초대 손님은 매일 두세 명이 나온다. 영화 배우도 나오고 문화 평론가, 공연 기획자 등도 빠지지 않는다. "역시 가장 인상이 남는 출연자는 어르신들이었어요. 신영복 선생님, 황병기 선생님 등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왜 '어르신'이라고 얘기하는지 새삼 깨닫게 되곤 하죠."

성우가 아닌 연극 배우들이 나와 희곡을 읽는 '라디오 연극'이란 실험도 해 보았다. 출연진과의 대화가 위주다 보니 음악은 한 시간에 평균 5곡 소개하기가 벅찰 정도. 자칫 딱딱하고 지루할지도 모르는 분위기, 그런데 이를 반전시키는 중심에 한씨가 있다. 무대에서의 폭발적인 가창력과는 달리, 헤드폰을 낀 그녀의 목소리는 너무나 차분하다. 따뜻한 감성과 문화에 대한 지극한 애정은 출연진의 마음을 누그러뜨리며 스튜디오를 순식간에 사랑방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동안 늘 혼자서 작업하는 일이 많았으니 방송하면서 처음으로 사회 생활을 한 거나 마찬가지죠. 이젠 처음 보는 분하고도 꽤 반갑게 인사할 만큼 뻔뻔해졌다고 해야 할까요."

토요일엔 '책 읽어주는 여자'란 코너가 있다. 약간 허스키한 목소리로 노래가 아닌 그녀의 음성을 듣는 것도 제법 운치 있다. 인터뷰 말미 나이를 슬쩍 물어보았다. "스물 여덟 살 꽃띠에요." 다른 건 몰라도 그녀의 마음이, 그리고 에너지가 여전히 청춘에 머무르고 있는 것은 사실인 듯싶었다.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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