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가 살려냈다는 어린이 물에 빠진 일 없었다|함께 놀던 어린이3명·현지주민들 증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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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생후 10개월밖에 되지 않은 「바둑이」가 익사직전의 어린아이를 구해냈다는 화제(본보 2일자 사회면보도) 는 본사의 현지조사 결과 사실과 다름이 밝혀졌다.
「보은의 충견」으로 표현된 이 화재가 보도된 뒤 관련자들은 현지에 내려간 기자에게『영배군(6)이 저수지의 비탈길을 걷다가 미끄러졌을 뿐 물에 빠진 일이 없으며 「바둑이」란 강아지는 영배군의 옷소매를 한 두번 물었을 뿐』이라며 각종 매스컴의 요란스런 보도를 오히려 의아해했다.
사건현장에 있던 3명의 어린이와 이를 보도기관에 전화로 알린 현지주민과의 면담. 현장등을 답사해 확인한 경위는 다음과 같다.

<경위>
영배군이 집에서 5백m쯤 떨어진 문제의 달전저수지에 놀려간 것은 지난1일 상오10시쯤.
가정실습으로 등교하지 않는 형 운배군(9·유원국3년)과 이웃에 사는 강성길 (12·유원국6년) 강병우(11·동5년) 군등과 였다. 이 때 이곳 주정식씨 (52) 집의「바둑이」가 집서 나와 이들을 따랐다. 이 강아지는 지난5월초 영배군의 아버지 전경돈씨(38)가 주씨에게 2만5천원에 판 것.
3천평쯤 되는 달출저수지는 가뭄으로 저수량이 43%(2만8천9백입방m밖에 되지 않아 동쪽고지대는 전체면적의 3분의1 가량이 운동장처럼 바닥을 드러내 평소 마을어린이들이 즐겨 찾아 놀던 곳. 이곳에서 강군 등 어린이3명이 야구놀이를 즐기는 동안 영배군은 바둑이를 데리고 못 가의 후미진 자갈밭에서 놀았다.
점심때가 훨씬 지나 형들이 집에 돌아가자고 하자 영배군은 함께 따라 나섰다.
맨 앞장을 선 성길군은 지름길을 택해 저수지의 비탈진 남쪽둑길로 걸어갔고 그 뒤를 3∼5m간격으로 병우군과 운배·영배·바둑이 순으로 뒤따랐는데 1백여m쯤 되는 둑길을 절반쯤 지날 무렵 높이 1·5∼2m의 비탈에서 자갈이 구르는 소리가 났다.
앞서가던 병우군과 운배군이 순간적으로 뒤돌아보니 마침 5m쯤 간격을 두고 맨 뒤를 따르던 영배군이 미끄러지면서 저수지물가 근처 비탈에 엎어져 있는 것을 바둑이가 달려가 영배군의 오른쪽 옷소매를 물어 두어 번 뒤로 제치자 영배군이 스스로 비탈을 기어 올랐다는것.
이 때 강군등 3명의 어린이는 영배군이 미끄러진 비탈에서 일어서 그들 앞으로 다가올 때까지 지켜보고 있었으며 결코 영배군이 물에 빠져 허위적 댄 일은 없었다고 말했다.

<소문확산>
어귀를 지나며「바둑이」가 영배군의 옷소매를 물어준 것이 신기해 이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주고받았는데 이 때 길을 지나던 주민 강회중씨(50)가 이같은 사실을 듣고는『개 만도 못한 사람이 많은 세상에 그런 일이 있었다니… 참으로 신기하고 기특하다』며『개가 사람을 살렸다』고 소문을 퍼뜨렸다. 강씨는 이어 이 사실을 보도기관에 알렸다.

<사실확인>
방송보도로 이 사실을 안 유원국민학교 최갑규교장(58)은 보도내용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강병우군의 담임인 박병옥교사(36)에게 알아보도록 지시했다.
사건당시 현장을 본 3명중 영배군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었던 형 운배군은 『영배가 미끄러졌을 때 바둑이가 곁에서 냄새를 맡듯 낑낑댔을 뿐 옷소매를 무는 것을 보지 못했다』 고 말했다. 이어 병우군은『옷소매를 물고 두어 번 뒤로 제끼는 것을 분명히 봤다』고 약간 엇갈린 말을 했다.
맨 먼저 앞장서 가던 성길군은 『이미 영배가 비탈에서 일어나 걸어 오는 것만 봤을 뿐』 이라고 말했다.
어쨌든 영배군이 물에 빠지지 않았다는데는 모두 일치했고 이들은 3일하오 교장실에서 최교장과 박교사가 입회한 가운데 다시 이를 확인했다.
개를 훈련시키는 전문가들도 생후 1년이 채 안되는 개의 지능으로 물에 빠진 어린아이를 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밝히고 있다.
본사기자와 만난 영배군은『물에 빠진 일이 있느냐』 『바지가 젖었느냐』는 두 질문에 모두 아니라는 뜻으로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문제의 개>
현재의 개주인 주씨와 부인 황무선(45)는 셋째아들 환호군(16·칠원중 3년)이 「바둑이」의 이름을 「매리」로 개명, 애지중지하고 있어 옛 주인에 돌려줄 수 없다고 잘라 말했으며 전씨도 되돌려 맡을 뜻이 없음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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