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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전문기자 칼럼

베를린필 티켓이 비싼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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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11월 7~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내한 공연을 하는 베를린 필하모닉(지휘 사이먼 래틀)의 R석 티켓 가격은 45만원이다. 지난해 빈 필하모닉 공연(35만원)을 제치고 오케스트라 공연사상 최고가 기록을 수립했다. 서울 공연 13일 후에 도쿄 NHK홀과 산토리홀에서 열리는 베를린 필 공연의 최고 가격은 3만6000엔(약 36만원). 두 도시의 물가 비교는 접어두고라도 서울 공연이 9만원 비싸다.

객석 위치에 따른 가격 차이도 서울 연주는 5등급인데다 R석, S석, A석, B석은 10만원씩 차이가 난다. 이에 반해 도쿄 공연은 5000엔(약 5만원) 차이로 6등급을 매겼다. 게다가 서울 공연은 R석과 S석이 고무줄처럼 늘어나 전체 객석의 60%를 차지한다. 예매 창구에 문의해 보니 B석은 발매 직후 금방 매진됐지만 R석, S석 티켓은 아직 많이 남아 있다고 한다. 주최 측은 처음부터 티켓 판매 목표를 80%로 설정한 다음 티켓 가격을 매겼다는 후문이다.

베를린 필 공연은 왜 이렇게 비싼 것일까. 도쿄 공연보다 9만원이나 더 받는 이유는 뭘까. 주최사에선 전석 매진돼도 손해라고 말한다. 2회 공연의 개런티 66만 유로(약 8억원)에다 항공료.숙박비.세금을 보태면 18억여원의 제작비가 드는데 5000여 장을 모두 팔아도 티켓 판매수입은 14억원에 불과하다는 설명이다.

그래도 궁금증이 풀리지 않아 산토리홀 홈페이지를 방문했다. '사이먼 래틀과 베를린 필'이라는 공연 제목 위에 'TDK 오케스트라 콘서트'라는 부제가 눈에 띄었다. TDK는 오디오.비디오 테이프 등 멀티미디어 제품을 만드는 회사다. 해마다 세계 정상급 교향악단 초청 공연을 후원하기로 하고 지난해 빈 필하모닉에 이어 올해 베를린 필하모닉 공연의 타이틀 스폰서를 맡았다. 도쿄 공연의 티켓 값이 서울 공연보다 싼 배경에는 기업의 이름을 내건 TDK의 후원이 있었던 것이다.

산토리홀 공연 캘린더를 훑어 내려갔다. 11월 22일과 27~28일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지휘 마리스 얀손스)의 공연은 '후지전기 수퍼 콘서트', 10월 9~16일 빈 필하모닉(지휘 리카르도 무티)의 공연은 '요코가와 전기 창립 90주년 기념', 9월 13일 뉴저팬 필하모닉 공연은 '미쓰코시 카드 클래식 시리즈'라는 부제를 달고 있었다.

기업의 후원 없이는 외국 교향악단 초청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불경기의 여파로 클래식 공연에 후원하는 기업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 안타깝다. 외환 위기 이전보다 사정이 훨씬 나쁘다고 한다. 협찬을 하더라도 그 금액에 해당하는 R석 티켓을 받는 것을 조건으로 내건다. 말이 협찬이지 '대량 구매'다. 협찬사에 줄 티켓을 감안해 R석의 액면 가격도 점점 높아진다. 백화점 등에서 R석 티켓을 구매해 우수 고객에게 경품으로 주는 경우도 있다. R석 티켓을 사서 공연 보러 갈 수 있을 만큼 여유 있는 부유층들에게 공짜 심리만 키워 줄 뿐이다. 티켓 값은 천정부지로 뛰고 협찬 덕분에 R석은 공짜표로 남발되는 사태가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