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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건 "왼팔"…「보수연합」이 깨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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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민주당의 승세가 확실해지면서 백악관참모들은 공화당의 손실 폭이 갖는 정치적 의미를 과소 평가하려는데 노력을 집중시켰다. 이번 선거결과가 예년중간선거에 비해 백악관의 앞날과 관계가 크다는 증거다.
1주일 전만 해도 백악관참모들은 공화당의 하원의석손실이 13석에서 27석의 범위 안에 머물 것이며 그 이상의 손실이 있을 경우에 한해서만 행정부의 입법활동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었다.
그러나 2일 밤 개표가 진행되면서 민주당의 의석증가가 예상을 넘어서자 백악관참모 「짐·베이커」는 기자들에게 행한 브리핑에서 백악관이 생각하는 「무승부」의 의석손실 폭은 20석 내지 3O석이라고 범위를 높여 말했다.
결과적으로 민주당이 26석의 증가를 기록했으니 백악관 계산대로라면 이번 선거결과는 공화당 행정부에 하등 문제될게 없다.
그러나 그런 상황판단은 백악관참모들의 소망은 될지언정 현실에 바탕을 둔 것은 아닌 것 같다.
유력한 미국신문들은 한결같이 지난 2년 동안 「레이건」의 보수입법을 순조롭게 도왔던 의회내의 「보수연합」은 깨어졌다고 진단하고있다. 같은 맥락에서 98차 의회에서는 보수연합대신 「진보연합」세력이 등장했으며 그 결과 「레이건」대통령은 지금까지 의회를 자기 마음대로 움직여온 철권을 잃었다고 분석하고있다.
그와 같은 진단의 바탕은 현 의회와 새로 구성된 의회의 의석 성향분포에서 찾아볼 수 있다. 「보수연합」이란 공식적 모임이 아니고 이슈별로 약간씩 이합집산하는 의원들의 원내표결성향을 뜻하는 용어다. 지금까지 이 연합은 진보색채가 강한 소수의원을 제외한 공화당의원전원과 보수성향이 강한 민주당의 남부출신 의원들로 구성되어있다.
이 연합의 덕택으로 「레이건」대통령은 하원에서 과반수에 49석이 모자란 공화당소수파를 이끌고도 군비증감·신연방주의 및 「레이거노믹스」로 지칭되는 경제정책과 「레이거니즘」으로 지칭되는 우경사회정책입법을 순조롭게 관철시켜왔다.
그러나 이들 정책을 의회에서 통과시킬 때 나타난 표 차는 대개 10표 미만이었고 중요의안의 경우 3∼4표 차밖에 되지 않았다. 보수연합의 기반이 그리 넓지 않음을 보여준 것이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이 추가시킨 26개 의석 중 전통적으로 보수성향이 짙은 남부출신 신참의원들은 대부분 「레이건」에 동조할 기색이 없다.
따라서 이들이 선배의원들처럼 보수연합에 가담할 가능성은 적다. 그래서 「보수연합」은 깨어졌다는 판단이 나온 것이다.
이와 같은 새로운 원내세력균형을 직접 타개해 나가야할 입장에 있는 공화당 하원 원내총무 「로버트·마이클」은 선거결과에 대해 백악관 측보다 훨씬 현실적 평가를 내리고있다.
그는 선거 결과가 판명된 3일 아침 TV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백악관이 지난 2년 동안 추진해온 정책들은 그 기본방향은 계속 추구하겠지만 약간의 수정은 해야될 것이다. 앞으로는 대결을 피하고 실용적으로 의안을 처리할 수 있도록 새로운 원내표 기반을 닦아야겠다.
무엇보다도 경기 회복책을 서둘러야겠다. 국민들에게 한없이 인내심만 요구할 수는 없다.』
이런 발언은 앞으로 남은 2년의 임기동안 「레이건」대통령의 의회관계가 지금까지 처럼 순탄할수 없음을 예고하는 것이다.
이번 선거의 또 하나의 초점은 「레이건」개인의 『표 모으는 마력』이 아직 건재 하다는 점이다. 80년 선거에서 「레이건」이 보인, 거의 초인적인 득표능력은 물론 이번 선거로 크게 퇴색했다. 그러나 이번 선거가 「레이건」의 정책에 대한 국민투표는 아니었기 때문에 정확한 판단이 어렵다.
단편적인 예는 있다. 「레이건」대통령이 두 번이나 찾아가서 지원유세를 해준 몬태나주의 「래리·윌리엄즈」주지사후보가 낙선했고 「슈미트」상원의원, 「힐러」하원의원 등 레이거노믹스를 발벗고 대변해온 의원과 정치인들도 낙선했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도 있다. 버지니아주의 상원의원후보 「트리블」이나 「레이건」이 한사코 미워한 「브라운」(민주당)에 대적한 캘리포니아주 출신 상원의원후보 「피터·윌슨」(샌디에이고시장)의 당선이 그것이다.
만약 「레이건」의 득표마력이 쇠퇴한 것으로 판정이 나고 나면 임기동안 의회와의 충돌로 그의 정책이 여의치 못할 경우 현재 71세의 고령인 「레이건」의 재출마를 막으려는 움직임이 당내에서 일수도 있다고 일부 관측 통은 보고있다.
백악관참모 「짐·베이커」는 이번 선거결과는 국민들이 「레이건」정책의 궤도수정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현 정책노선을 고수할 뜻을 강력히 비쳤다.
그러나 한 논평가는 「레이건」의 캘리포니아 주지사 때 실적을 보아 이념을 고집하기 보다 타협을 해서 의회와의 관계를 원만히 밀고 나갈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이번 선거의 총체적 평가는 「레이건」정책에 대한 거부까지는 안가고 실업문제와 불황에 대한 불만의 표시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 평론가는 이번 선거에서 『이념은 없고 포킷만 있다』고 평했다.
이 평가가 맞으면 80년에 일어난 보수주의의 물결에 대한 반작용 내지 판정은 84년 대통령선거로 미루어지는 셈이다.
민주당은 절호의 기회를 재대로 이용하지 못 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경제난국을 강조함으로써 유권자들 마음에 공포심을 일으키는데는 성공했지만 낡아빠진 「케인즈이론」이외에 새로운 대안을 내놓지 못했기 때문에 공화당에 대한 반발표 밖에 모으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점은 민주당 진영에서도 시인하고 있다. 그래서 앞으로 남은 2년 동안 민주당의 경제정책대안을 작성하기 위한 경제자문회가 이미 진보파 경제학자들로 구성되었다.
앞으로 「레이건」행정부의 기본정책방향에는 변화가 없겠지만 이번 선거로 등장한 새로운 원내세력 균형과 전국적 지지기반의 변화로 워싱턴의 정치기류는 84년 총선을 정점으로 계속 난기류를 면치 못할 전망이다.
【워싱턴=장두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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