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볼모」 국교생 가족품에 안겼다 |「어느 고마운 아저씨」가 치료비전액 내 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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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치료비를 내지 못해 새장 속 같은 병실에서「갇힌생활」을 했던 심재희양(11·서울응암국교5년·중앙일보10월30일자보도)이 보도당일에 3백만원이 넘는 인정이 모여 그리던 부모와 학교품으로 돌아갔다. 딱한 사연, 절망의 늪에 빠진 불우이웃에 보내진 따스한 손길은 생의 의욕을 북돋워주었고 우리 사회가 결코 각박한 것만은 아니라는것을 새삼 느끼게 했다.
이름을 끝내 밝히지 않은채 거액의 성금을 보낸 분들, 저금통을 턴 어린이들, 따스한 격려의 편지를 보내준 많은 분들, 모두가 고맙고 눈물겨운 이웃이다.
『엄마! 재희가 왔어요』30일 하오7시 불쑥 나타난 「고마운 아저씨」의 치료비 전액부담으로 4개월20일만에 병실을 나와 집으로 돌아간 재희양은 한동안 엄마를 부둥켜안고 말을 잊었다. 아무도 찾아주는 이 없을 때 사람 눈을 피해 누나병실을 숨어들어 만났던 동생 재열군도 좋아서 어쩔 줄 모르며 누나뺨에 얼굴을 비비며 떨어질 줄 몰랐다. 「뜻밖의 손님」은 눈앞의 정경을 흐뭇한 듯 묵묵히 바라만 보고 있었다.
선행이 겉으로 드러나길 극구사양하며 「평범한 시민」이라고만 밝힌 40대의 아저씨는 30일 하오 중앙일보를 읽고 『하루라도 빨리 재희양을 가족에게 돌려보내야 한다』는 심정으로 병원에 달려가 퇴원수속을 마쳤다.
강남에서 복덕방을 하는 정씨라고 말하는 40대의 이 아저씨는 병원비 2백53만원 전액을 지불했다. 재희양이 완쾌된 8윌17일 이후의 입원비 1백여만원은 병원 측이 면제해 주는 호의를 베풀었다.
모녀상봉의 자리에는 가장 반가와 해줄 아버지 심관섭씨 (35)는 하루전날 고향인 충남당진으로 날품팔이를 떠나 재희양을 섭섭하게 했다.
자기 방에 들어간 재희양은 2학기 책과 책가방을 챙기며 『아저씨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더욱 열심히 공부해 간호원이 되겠다』고 다짐하며 맑은 눈망울을 반짝였다.
「평범한 시민」정씨는 재희양의 사연을 읽으며 너무 안타까와 목이 메었다고 했다.
정씨는 『자라는 어린이에게만은 이 사회가 메마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자신의 넉넉지 못한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입원비를 부담하겠다는 생각을 가졌다고 말했다.
서울잠실에서 올해야 겨우 구입한 17평짜리 아파트에 부인과 2남2녀를 두고 조그만 복덕방을 경영하는 정씨는 재희양의 사연을 읽고 자신이 끼니를 거르며 국민학교에 다니던 일과 고학생시절을 떠올렸다고 했다.
정씨는 대학2년을 중퇴하고 막노동과 가게종업원등으로 일하며 어려운 살림을 꾸려나간 결과 이젠 어느 정도 안정됐기 때문에 자신처럼 불우한 이웃에게 눈을 돌리게 됐다고 말했다.
정씨는 1년 후 재희양이 중학교에 진학할 때 자신이 계속 도와줄 수 있도록 계획하겠다고 밝혔다.
정씨는 자신의 이같은 일이 한푼이라도 아껴 알뜰하게 내조해온 부인에겐 쉽게 이해가 되지 않을 것 같다며 신분이 밝혀질까 봐 걱정하기도 했다. 이날 서울 이문동의 한 독지가는 5만원을 보내왔다.
구본석서울시 교육감도 30일 재희양부모에게 금일봉을 전달했다.
또 수원 새마을연수원 11기 동문회장 태완선씨가 20만원, 장학재단인 회림 육영재단(회장 이회림)에서 10만원, 익명의 독지가가 10만원을 각각 보내왔다.
태씨는 중앙일보의 보도를 통해 재희양의 딱한 사정을 듣고 새마을연수를 함께 받았던 동문들과 친구인 이회장과 연락, 적은 액수나마 재희양을 돕는데 보탬이 됐으면 하는 뜻에서 성금울 전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맑게 갠 1일아침 가방을 챙겨들고 학교로 향하는 재희양의 발걸음은 한결 가벼웠다.

<한천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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