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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 홀린 ‘아를의 여인’을 품다, 향기의 진수가 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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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면

록시땅의 크리스마스 한정판 바디 오일. 창립자인 올리비에 보송의 부인인 나데트 보송이 아를의 여인들이 춤추는 모습에서 영감을 받아 도안(큰 사진)을 디자인했다.

연말이면 각종 한정판 제품이 쏟아진다. 기존의 제품들과 차별화해 소비자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서다. 최근에는 단순히 포장만 달리하는 제품보다는 ‘스토리텔링’을 통해 충성도 높은 고객을 확보하는 쪽으로 진화하고 있다. 해마다 해당 브랜드의 한정판 상품을‘수집’하게 만드는 전략이다. 2004년부터 해마다 크리스마스용 한정판 제품을 선보이고 있는 록시땅의 제품 출시 현장을 방문해 스토리 텔링의 노하우를 살펴봤다.

신제품 출시회장에서 제품의 의미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올리비에 보송.

프랑스 프로방스 지역의 자연주의를 표방하는 록시땅은 크리스마스용 한정판 제품에 남다른 공을 들이는 브랜드다. 록시땅 관계자는 “크리스마스가 있는 12월에는 한 달 평균 매출의 배에 달하는 제품이 판매된다”고 말했다. 록시땅으로선 크리스마스 기간에 팔려나가는 제품이 ‘13월의 매출’이 되는 셈이다.

록시땅은 2004년 크리스마스 한정판 제품에 17세기 그라스 지방의 향수 상인을 모티프로 한 도안을 입히기 시작했다. 창립자인 올리비에 보송이 모든 도안을 직접 손으로 그렸을 정도로 이 기간에 판매되는 제품에 특별한 애정을 쏟아왔다. 그 후 10년이 지난 올해 록시땅은 한정판 제품의 주제를 ‘여성’으로 정했다. 그 중에서도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준 ‘아를의 여인(아를레지엔느)’을 모티프로 삼았다. 이를 위해 록시땅은 올해 7월 프랑스 남부의 작은 마을인 아를에서 크리스마스용 신제품을 발표했다. 한여름에 그해의 크리스마스를 미리 준비하는 발상 자체가 예사롭지 않다.

1 전통 복식을 입은 아를의 여인들. 2 크리스티앙 라크루아의 사진전. 3 향수의 원료로 사용된 바이올렛.

아를의 여인은 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준 존재다. 프랑스 작곡가 조르주 비제가 만든 ‘아를의 여인’이나,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그린 ‘아를의 여인’과 ‘아를의 여인들’ 등이 대표적이다.

왜 예술가들은 아를의 여인에 열광했을까. 부르조아 출신인 한 아를의 여성이 가난한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가 결혼이 불가능하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전설이 있는가 하면, 로마인들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아를 지역의 여성을 로마로 데려가기 위해 남프랑스까지 진출했다는 설도 있다. 이 때문에 프랑스에선 기다려도 오지 않는 이를 두고 ‘아를레지엔느’라고 부르기도 한다.

아를의 여성이 유명해진 데는 아를 지역 여인의 화려한 전통 복식도 한몫했다. 아를의 여성들은 다양한 무늬로 프린트된 풍성한 치마와 가슴 앞을 장식하는 겹겹의 레이스, 화려한 머리 장식으로 유명했다. 아를에서는 지금도 미인대회를 열어 ‘퀸(여왕)’을 뽑는데, 선발된 퀸은 지역의 방언을 사용하고 전통 복식을 계승해 이를 후대에 전수하는 역할을 한다.

이런 아를의 여인을 제품 개발의 모티프로 삼으면서 록시땅은 ‘자유’라는 가치를 부여했다. 보송은 발표회에서 이번 제품에 담긴 철학을 ‘앱솔루투스(Absoulutus)’란 한 단어로 압축했다. 그는 “라틴어인 앱솔루투스는 완전한(Absolute)과 같은 말로 모든 제한에서 자유롭다는 철학적인 의미를 지닌 단어”라며 “현대 여성들을 가장 잘 표현해 주는 단어인 동시에 ‘향기의 진수’라는 뜻도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록시땅은 이런 철학을 담아 크리스마스 한정판으로 ‘아를레지엔느’라는 향수를 만들었다. 프로방스에서 재배된 세 가지 종류의 꽃(샤프란·로즈·바이올렛)을 주재료로 삼았다. 향수의 향기는 크리스마스 한정판으로 나온 다른 제품에도 똑같이 적용됐다.

록시땅은 단순히 제품 개발을 위해 ‘아를의 여인’의 이미지만 차용한 것이 아니라 실제 아를 지역의 문화 행사를 지원함으로써 ‘제 2의 스토리텔링’을 만들어 냈다. 록시땅은 같은 기간 아를에서 열리는 국제사진전을 2년 연속 후원했다. 특히 올해엔 아를 출신이자 사진전에서 ‘아를레지엔느’라는 테마관의 예술 감독을 맡은 크리스티앙 라크루아의 사진전을 지원했다. 이에 대해 보송은 “신제품을 알리기 위한 문화적 접근법”이라고 설명했다.

스토리텔링을 통해 제품의 차별화를 꾀하는 다른 브랜드도 부쩍 늘었다. 친환경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를 표방하는 아베다는 베스트셀러 제품으로 구성된 패키지 상품을 크리스마스용 한정판 제품으로 선보이고 있다. 아베다는 제품을 포장하는 박스에 특별한 이야기를 담았다. 아베다는 올해로 7년째 네팔의 록타(Lokta) 종이를 박스 용지로 사용하고 있다. 아베다 측은 “그동안 180만 장이 넘는 록타 종이가 소비됐고, 5500명이 일자리를 얻었으며, 이를 통합 수입으로 6100명의 아이들이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록타 종이는 생태보호단체인 ‘와일드 라이프 프렌들리’의 인증을 받은 방식으로 채취되기 때문에 히말라야 생태계를 보호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국내 브랜드에서도 브랜드가 지향하는 가치나 스토리를 입히려는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설화수는 2003년부터 연말에 실란 메이크업 리미티드 에디션을 선보이고 있다. 올해는 장신구 공예 작가인 이현경 작가와의 협업을 통해 케이스에 자개 공예를 입힌 프리미엄 리미티드 콤팩트와 컬러팩트를 출시했다. 두 제품 다 반투명한 사각모양의 진주 조각들을 부착해 매화 모양을 형상화한 것이 특징이다. 화장품이 아닌 수공예품을 보는 듯한 고급스러운 느낌을 준다. 지난해엔 브랜드의 상징인 매화꽃을 포목상감기법으로 구현한 한정판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런 스토리를 입힌 한정판 제품은 고객 충성도를 높이는 효과도 있다. 설화수 관계자는 “해마다 선보이는 한정판 제품은 로열티가 높은 고객층 사이에서 인기”라고 말했다.

발아식물 화장품 브랜드 프리메라는 크리스마스 제품 판매를 통한 수익금의 일부를 기부하는 ‘렛츠 러브 캠페인’을 진행한다. 지난해부터 시작한 이 캠페인은 인도 자무이 지역 여성들의 생활 환경 개선을 위해 제품 판매 수익금의 일부를 1000그루의 망고 묘목으로 제공하는 프로젝트다. 이번 크리스마스 제품 역시 망고 버터를 이용한 제품군을 선보였다. 망고 버터 컴포팅 바디 로션·워시·핸드크림 등이다.

아를=김경진 기자 사진=록시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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