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전·후보 똑같이 대했다, 따로놀던 팀이 뭉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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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트윈스 감독실에 붙은 ‘뚜벅뚜벅 나아가겠습니다’는 문구는 올 시즌 양상문 감독이 가장 많이 한 말이다. 욕심내지 않고, 천천히 올라가겠다는 뜻이다. 부임 당시 꼴찌였던 팀이 4위까지 올라가는 과정이 그랬다. [신인섭 기자]

“한국시리즈는 도미니카에서 휴대폰으로 봤어요. 역시 LG폰 화면이 좋던데요. 하하”

 양상문(53) 감독은 1년 새 LG맨이 다 돼 있었다. 올해 5월, 꼴찌로 떨어진 LG 트윈스를 맡은 양 감독은 짧은 시간 안에 분위기를 추슬러 팀을 포스트시즌에 올려놨다. 준플레이오프에서 NC를 꺾었지만 플레이오프(PO)에서 넥센의 기세를 넘지 못했다.

 양 감독은 “LG가 한국시리즈에 갔더라도 삼성한테 이기기는 힘들었을 것”이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4년 연속 통합 챔피언에 오른 삼성 류중일 감독이 부럽긴 하지만, 4~5년 연속 우승하는 팀보다도 꾸준히 상위권을 유지하는 팀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2일 서울 잠실야구장 LG 트윈스 감독실에서 양 감독을 만났다.

 - LG는 왜 한국시리즈에 못 갔을까.

 “강한 팀을 이기기 위한 확실한 선수가 없었다. 삼성 밴덴헐크와 맞붙을 수 있는 선발 투수, 치열한 접전 상황에서 한방 쳐 줄 타자도 있어야 했다.”

 - PO에서 수비·주루의 미숙함이 드러났는데.

 “지난해 우리가 11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올랐다. 대부분 선수들에게 올해가 두 번째 포스트시즌이었다. 중요한 경기에서 나오는 실수는 경험 부족이라고 봐야 한다. 내년엔 그런 실수가 없을 것이다.”

 - 부임해서 바꾼 게 있고, 바꾸지 않은 게 있는데.

 “불펜 투수들에게 명확한 자기 역할을 준 것, 타순에선 정성훈을 고육지책으로 1번에 넣고, 이병규(등번호 7)를 4번에 고정시킨 게 크게 바꾼 거라고 본다. 반면 기존 LG의 팀 컬러는 크게 손 보지 않았다.”

 - 취임식에서 ‘승률 5할이 될 때까지 세리머니를 안하겠다’고 말한 의미는.

 “프로야구 감독과 구단이 마지노선으로 삼는 것이 5할 승부다. 5할에는 팀의 자존심이 걸려 있다. 한 게임 이긴 뒤에 수고했다고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나는 시즌을 다 마치고 우리가 원하는 목표를 얻었을 때 손 한번 잡고 수고했다고 말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만약 타자가 역전 홈런을 때렸다면 다음 투수를 누굴 낼 건가 빨리 코치들과 상의해야 한다. 그래야 투수가 1분이라도 더 준비할 수 있다.“

 - 기념구에 ‘대선수가 되세요’(채은성), ‘500경기 더 같이 하자’(이동현)고 써준 걸 보면 선수들 마음까지 챙기는 ‘엄마’ 같기도 하다.

 “기록을 달성하면 공에 날짜·이름만 쓰는 게 일반적이다. 평생 간직할 공인데 너무 의미가 없어 보였다. 은성이는 LG의 주전 외야수가 되라는 마음에서 쓴 거다. 동현이와는 코치 시절부터 인연이 깊다. 500게임 했으니, 앞으로 500게임 더 같이 하자는 게 내 솔직한 마음이다.(LG에서 장기집권 하려는 의지가 아니냐고 하자 양 감독은 크게 웃었다)”

 부산고 재학 시절부터 양상문은 ‘경남고 최동원과 맞장 뜨는 스타’였다. 체격이 크지 않았지만 제구력이 뛰어나고 침착한 마운드 운영이 돋보이는 좌완 투수였다. 고려대 1학년때 어깨를 다친 이후 양상문은 프로에서 기대만큼 기량을 꽃피우지는 못했다. 하지만 ‘양박사’라는 별명처럼 학구적인 자세로 지도자로서 뛰어난 역량을 보여줬다.

 - 본인의 리더십은 어떤 색깔이라고 생각하나.

 “팀의 주축 선수는 가만 둬도 알아서 잘 한다. 뒤에 처져 있는 선수들에겐 감독의 힘과 관심이 필요하다. 주전이든 백업이든 똑같이 대해줘야 한다. 나는 상벌관계에서 똑같은 잣대를 적용했다. 감독은 정직해야 한다. 우리 감독이 정직하다는 걸 선수들이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해설위원을 오래 했는데, 해설위원의 눈으로 봤을 때 LG의 장점과 단점은.

 “잠재력 있는 선수가 꽤 있었다. 전력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올 시즌을 앞두고 양상문 해설위원은 ‘LG가 4강은 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굳이 단점을 따진다면 뭉치는 맛은 부족해 보였다.”

 - 지금은 끈끈해졌나.

 “그렇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뭉친다는 게 폭탄주 마시면서 ‘잘 해보자’고 으쌰으쌰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목표를 향해 한마음으로 가면 그게 뭉치는 거다. 팀을 위해 희생해야 할 때 희생하고, 해결해 줘야 할 때 해결해 주는 것이다. 내가 부임한 뒤 선수들의 불평불만이 줄어들었다고 본다. 불평불만이 줄어들면 같은 곳을 바라보지 않겠나.”

 - 자유계약선수 장원준(롯데→두산)을 잡았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지 않나. 확실한 선발 원투 펀치가 안 보이는데.

 “물론 나도 걱정된다. 수술대에 오른 선발 투수 류제국과 우규민의 합류가 늦어질 수 있다. 그래서 외국인 투수를 심사숙고해서 뽑으려 한다. 장원준은 꼭 잡으려고 했다. 그런데 가격이 너무 올라가 잡지 못했다. 물론 장원준이 오면 좋지만 오지 않으면서 다른 선수들에게 기회가 보장된 거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이 선수들이 10년 후에 LG의 에이스가 되어 있을 거다. 당장은 장원준 못 잡은 게 가슴 아프지만 멀리 보면 이 아픔이 더 큰 기쁨이 될 수 있다.”

 - 내년에 가장 많이 바뀔 팀은 어디라고 보나.

 “한화와 SK다. 김용희 SK 감독의 리더십이 아주 뛰어나다. (무르다는 평가도 있다고 하자) 절대 그렇지 않다. 코칭스태프와 선수 간의 분위기가 좋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성근 감독의 한화도 기대된다.”

 - LG 팬들이 참 고맙지 않나. 마지막 경기에서 크게 지고 있는데도 끝까지 응원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우리 선수들은 팬들 생각하면 모든 게 해결된다. 야구만 생각할 수밖에 없다. 나한테 고교 교사라는 팬이 손편지를 보낸 적이 있다. ‘꼴찌 팀을 PO에 올려놓은 것을 보고 우리 아이들에게도 희망을 가지라는 말을 할 수 있게 됐다’는 내용이었다.”

 - LG는 어떤 색깔을 가진 팀이 됐으면 좋겠나.

 “최근 야구의 트렌드를 보면 빠른 팀이 돼야 한다. 그래야 한점 승부에서 이길 수 있고, 어려운 경기를 풀어나갈 수 있다. 우리는 아직 빠른 선수가 부족하다. 빠른 야구를 할 수 있는 선수 구성에 집중할 생각이다.”

 - 한 시즌을 버틸 수 있는 강한 체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야구에 필요한 체력은 펑고(코치가 친 공을 받는 수비훈련) 1000개 한다고 생기는 게 아니다. 야구에서 체력이라는 건 야구를 얼마만큼 하고 싶으냐다. 야구에 대한 절실함과 즐기는 마음이 있다면, 유니폼 입고 야구장에 나오는 게 행복하다면 야구는 1년 내내 할 수 있다.”

 - 그럼 김성근 감독이 하는 지옥훈련은 어떤 의미가 있나.

 “그건 체력이 아니라 정신력을 키우는 것이다. 선수 자신이 이만큼 했다는 자신감을 갖는 거다. 또 기량이 떨어지는 선수는 펑고 1000개를 받으며 동물적인 동작이 나오게 해야 한다.”

 - 내년 LG는 어떤 팀이 돼 있을까.

 “찬스에서 쉽게 물러나지 않는 팀, 3루 주자를 홈으로 불러들일 수 있는 팀이 되도록 하겠다. 찬스에서 20~30% 득점을 더 올리면 5~10승은 더 할 수 있다. 스프링캠프에서 확실하게 준비하겠다.”

정리=김원 기자
만난 사람=정영재 스포츠데스크
사진=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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