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 언론사 정치부장 간담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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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대통령이 18일 중앙언론사 정치부장들과의 청와대 간담회에서 연정 및 과거정권의 도청 등 정치 현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춘식 기자

노무현 대통령과 정치부장단의 간담회에선 최근 노 대통령이 양산해 낸 주요 현안들이 화제가 됐다. 연정과 과거 정권의 도청, 국가 기관의 권력남용에 대한 공소시효 배제 등이다. 대통령이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 주제는 연정이었다. 1시간 가까이 이 문제를 설명했다. 가장 흥분한 대목은 정부의 경제 정책이 국민기대에 못 미치는 것 아니냐는 요지의 질문에서였다.

대연정
"대연정 협상 야당에 정식 제의할 것"

▶노 대통령=오늘 내가 위기감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 그런데 여론 흐름을 보면 국민이 문제점으로 생각하는 것과 내가 문제로 생각하는 것이 조금 다른 것 같다. 나는 좀 동떨어져 있다는 이런 느낌이다. 내가 심각하다고 생각해 제기한 문제엔 언론이나 국민이 냉담하고 그 안에 있는 부차적인 갈등요소만 부각되니 나로서는 힘들 때가 많다.

▶질문=연정을 추진할 수 있는 새로운 복안은 있는지.

▶노 대통령=우리 정치에서 헌법의 권력구조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게 선거법이나 정당의 당헌 당규다. 조윤제 영국 대사로부터 그 나라의 정치제도에 관한 보고서를 받았다. 그중에 정당 내부의 공천제도, 총리를 지명하거나 선출하는 제도에 대한 내용들이 있는데 읽으면서 어쩌면 이것이 아주 결정적이다, 이런 생각을 했다. 한나라당이 거부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별로 득 볼 것이 없어 거부한 것 아니겠는가. 한나라당은 덕 볼 것 없다 차원이 아니라 연구해서 옳지 않으면 옳지 않다는 당당한 논리를 갖고 거부를 해 달라는 거다. 내가 특수한 지위다. 영남 사람이면서 호남당과 함께 수십 년 동안 지역주의와 맞서왔다. 그래서 지금은 지역갈등이 상당히 완화돼 있다고 봐야 한다.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지역주의, 여소야대, 대화할 줄 모르는 불신의 정치, 타협은 사쿠라가 되는 이 문화를 가지고 한국이 제반 문제들을 풀어갈 수 있겠는가. 이게 위기다. 당장 2008년이 되면 수급자가 엄청 많아지는 국민연금 문제가 안 풀리고 있다. 합당하자는 말도 아니고 대연정이 안 되면 정책 합의라도 이뤄나갈 수 있는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 우리 사회가 이 문제를 함께 고민할 때까지 여러 방법으로 문제를 제기할 것이고 야당에 대해서는 정식으로 정치 협상을 제안하겠다.

▶질문=연정 제안에 대해 야당 측이 어떤 노림수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시각도 있다.

▶노 대통령=연정은 양쪽에게 공평한 기회다. 국민이나 국익의 측면에서는 무조건 좋다. 합의의 과정이 국회냐 합동의총이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다만 국민이 찬성하지 않는 이유는 정치권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노림수라 할지라도 한나라당이 나보다 한 수 위면, 마음 딱 비우고 큰 선택을 하면 대통령 노림수가 무슨 소용이 있나? 상대방이 겁을 내고 뒷걸음질치면 결과적으로 노림수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야당은 나를 대통령으로 인정 안 했다. 내가 일부 장관직도 제안한 일도 있다. 거국내각이나 대연정이나 똑같은 것인데 차이가 날게 뭐 있나?

▶질문=열린우리당 국회의원 중에서도 연정 문제를 전심전력으로 이뤄내야 되겠다는 의지를 가진 분들을 많이 발견하기가 힘들다.

▶노 대통령=당 지도부와는 두세 차례 상의했다. 그 다음 순서는 공론화다. 공론에 부쳐 놓고 대의를 가지고 밀고 나가야 된다. 나는 필생의 소망을 제기하는 거다. 못해서 대통령 체면이 깎이는 한이 있더라도 제기해야 한다.

경제난
'당신이 와서 해보지' 속으로 말해

▶질문=개혁과 연정이 되기 위해서라도 경제가 나아져야 되는 것 아닌가.

▶노 대통령=불만을 좀 얘기하겠다. 고유가 대책에 무슨 뾰족한 수가 있겠나. 요즘 기사들 보면 '정부가 대책도 없이 고유가를 바라만 보고 있어 답답하다'고 하는데… 내가 기사 쓴 사람한테 '당신이 와서 해 보지'라고 속으로 말한다. 요즘 정책 대안에 대한 기사는 해당 부처와 청와대 참모, 그리고 내 의견을 달아 토론 부치고 정책으로서의 채택 가능성을 검토한다. '이런 이런 대책이 있는데 왜 안 하냐?'라고 하면 모르겠다. 대책도 없이 억지 비판을 하는 게 좋으냐. 그냥 조지니 죽겠다 정말. 앞으론 대안이 아닌 기사에 대해서는 우리도 대응을 하겠다. 지금까지는 사실이 아닌 오보에만 대응을 했지만 공무원들이 기사 쓴 사람과 토론을 할 거다. 이해찬 총리가 일상 경제 운용에 관해 나보다 더 유능한 것은 사실이다. 굉장히 책임 있게 스피디하게 잘 꾸려가고 있다. 또 외교와 안보 부분, 특히 대북 정책 부분에서 정동영 장관이 잘 보좌하고 있다. 다음 정권에 부담을 넘겨주지는 않을 것이다.

▶질문=6자회담의 교착 요인인 북한의 평화적 핵 이용 문제와 관련해 우리의 입장이 매우 모호하다.

▶노 대통령=궁극적 질서로는 핵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게 어느 나라든 갖고 있는 당연한 권리다. 때문에 미국이라 할지라도 당분간의 얘기거나, 시기와 조건의 문제지 궁극적으로 영원히 (평화적 핵을) 갖지 말라는 주장은 아니라고 봐야 한다. 한국 정부는 원론적으로 평화적 핵 이용은 모든 국가의 권리라고 생각하는 상황이다.

공소시효 배제
형사소급 염두에 둔 사건 없어

▶노 대통령=시효 배제 문제는 참여정부가 더 엄격한 책임하에서 권력행사를 하겠다는 의지가 일차적인 것이다. 누가 봐도 부작용없이 해소될 수 있는 특별한 부분을 예외적으로 논의할 수 있겠지만 염두에 두고 있는 사건은 단 한 건도 없다. 형사소급 문제에 관해서 그렇다. 민사상으로는 실제로 해소돼야 되는 문제가 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민주화가 되니까 과거 독재정권의 권력자로서 치부하다 신군부에 재산을 뺏겼던 사람이 제일 먼저 권리회복을 하고 진짜 피해자는 시효 지나서 해결이 안 됐다. 이것을 보고 지금까지 가슴에 담아두고 있다. 과거사를 가지고 내가 누구를 감옥에 넣자는 것도 아니고 재산을 다 뺏자는 것도 아니다. 정의가 살아있다면 잘못된 과거사에 대한 최소한의 정리는 해야 된다. 과거사 기본법의 모호한 부분에 대해 그 일을 추진하는 사람에게 내가 과제를 준 것이다. 그래서 시효 문제를 가지고 당과 미리 상의하지 않았다.

불법 도청
"도청, DJ정권 책임질 과오 없어"

▶질문=옛 안기부 불법 도청 사건은 형사상 시효 배제가 적용될 수 있는 사안이라고 보는지, 수사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는지.

▶노 대통령=도청 사건을 포함해 어느 사건에 대해서도 시효 완성된 범죄에 대해 소급해서 수사하고 처벌하는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일이 없다. 다만 소급 처벌과는 별개로 진실을 밝히는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가 어떤 합의를 이뤄내야 한다. 지난번 연설문에 '시효는 완성됐어도 역사적 정리가 필요한 수사의 근거를 만들어 두어야 합니다'는 부분을 내가 썼는데 분량 때문에 담지 못했다. 앞으로 '역사와 미래위원회'를 구성해 여러 과거사위원회에 소속된 사람들이 다 함께 참여해서 이런 문제들에 대해 연구해야 할 것이다. 도청에 관해 나는 일부 국정원 조직의 도청과 정권의 도청이 따로 있을 거라고 생각을 못했는데, 국민의 정부시대 얘기가 나오고부터 생각해보니까 도청도 구분해서 생각을 해야겠구나 했다. (참여정부든 국민의 정부든) 정권이 책임질 만한 그런 과오는 없다. 비서실장이 '국민의 정부에서도 있었답니다. 어떻게 할까요?' 하기에 '사실대로 하십시오'라고 했다. 민정수석실도 비슷한 수준의 보고를 했는데 내가 내용을 자세히 보지 않았다. 정권 차원이냐 아니냐를 묻지 않았다. 그런데 국정원이 발표한 걸 보니까 내용이 좀 부실한 것 같다. 이것이 내 상상의 부족이다. 정권 차원의 엄청난 사건으로 비화돼 버리니까 나도 지금 당황해하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가 다르고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가 또 다를 것이다'라고는 감히 말할 수 있다. 나는 누구누구 사람 뒷조사하는 정보는 단 한 줄도 보고받은 적이 없다. 특히 야당이 어쩌고 하는 것, 그거 아무 도움이 되는 정보도 없다. 국정원 조직 개혁에 관한 문제는 좀 차분하게 논의하는 게 좋겠다.

최훈 기자 <choihoon@joongang.co.kr>
사진=김춘식 기자 <cyjb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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