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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장 이문제] "파리떼 때문에 못 살겠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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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 재덕동 괴정마을 앞 매립지에서 사육되고 있는 파리 유충 천척 오리들. 송봉근 기자

18일 진해만을 끼고 있는 아름다운 항구인 경남 진해시 제덕동 괴정마을.

마을에 들어서자 악취가 코를 찌른다. 집 대문과 담장마다 파리떼가 새카맣게 몰려 다닌다.

무더위가 기승인데도 120가구의 창문과 대문은 굳게 닫혀 있고 인적이 드물다.

항구를 따라 늘어서 있는 20여 곳의 낚시 가게와 횟집 등에도 손님은 거의 없다.

주변에 낚시가 잘되는 섬이 많아 하루 300~400여 명의 낚시꾼이 붐비던 이 마을은 3년 전 마을 앞에 조성된 50여만평의 신항만 준설토매립장에서 악취가 풍기면서 한산한 어촌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올 여름엔 매립장에서 날아 온 파리떼까지 극성을 부리면서 주말마다 찾던 수십명의 낚시꾼마저 발길이 끊겼다.

18년간 낚시점을 운영해 온 이성배(56)씨는 "파리떼가 몰려 오기전인 지난달 만해도 300여 만원의 수입을 올렸으나 이달 들어 겨우 20여 만원밖에 벌지 못했다"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걱정이다"고 말했다.

이씨는 1억7000만원 들여 건조한 낚싯배(1.8t)를 항구에 묶어 두다시피 한다. 이 마을 낚시점 8곳 중 2곳은 문을 닫았다.

횟집 주인 주군자(63.여)씨는 "지난달에는 100만 이상 파는 날도 많았으나 이달엔 허탕치는 날도 있다"며 "식탁에 달라 붙은 파리떼를 보고 돌아가는 손님도 있다"고 하소연했다. 횟집도 6곳 중 2곳만 문을 열어놓고 있었다.

또 파리에 물리는 사람이 속출, 마을에 비상이 걸렸다.

다리에 10여군데 물린 흔적이 있는 이봉문(57.괴정마을)씨는 "파리에 물린 곳을 긁으면 물집이 생기고 연고를 바르고 주사를 맞아도 잘 낳지 않는다"고 말했다.

파리에 물려 온 몸이 벌건 박현빈(5)군은 파리떼만 보면 울면서 도망간다.

항만 시공업체들이 지난달 초부터 방역을 시작했으나 구토나 어지러움을 호소하는 주민들이 늘면서 2차 피해에 대한 불안감도 높아지고 있다. 이달 초 수도마을 윤모(60)할머니가 두통으로 병원에 실려가기도 했다.

해양수산부는 질병관리본부와 환경전문가 등 10명으로 대책팀(팀장 정만화 항만국장)을 구성해 실태조사에 나섰다.

대책팀은 문제의 파리가 유기물질이 많은 곳에 서식하는 '극동 물가파리'로 확인하고 천적인 청둥오리 3000마리 방사하고 곤충 성장억제제를 살포하는 등 방제에 나섰다.

괴정마을 정해영(46)이장은 "주민들의 고통과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대책을 하루빨리 대책을 세워달라"고 말했다.

김상진 기자 <daedan@joongang.co.kr>
사진=송봉근 기자 <bks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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