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터 회고록|「신의를 지키며」…국내 독점 연재 <14>|캠프데이비드 산장의 13일 ③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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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캠프데이비드에서의 첫날 밤 「베긴」과 단둘이 만난 자리에서 나는 그에게 회담에 필요한 시간은 얼마든지 여유가 있다고 설명했다. 사실 우리는 외따로 떨어진 캠프데이비드에서 합의에 도달할 때까지 며칠이 되든 머물러 있을 수 있었다.
나는 「베긴」 에게 미국 측이 앞으로의 협상에서 타협안을 내놓아야 하는 권리와 동시에 의무를 가지고는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단순히 최선의 것으로 생각되는 어느 한 나라의 입장을 채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나는 또 미국 측의 공식제안을 「사다트」나 「베긴」, 어느 일방에게 먼저 건네주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며 비 공식초안을 사전에 양측과 협의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베긴」은 미국제안을 「사다트」 에게 전달하기 전에 이스라엘이 먼저 보아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나는 「베긴」에게 「사다트」와의 친분을 두텁게 하는 것이 큰 잇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으나 협상이 시작되고 나서 마지막 10일 동안 그들은 불과 1백야드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숙소에 머물고 있으면서도 서로 말 한마디 나누지 않았다.
첫날 저녁 나는 적극적인 자세를 취해야겠다고 결심하고선 이스라엘의 안보가 지상과제이며 이 중대한 문제에 대해 희미하게 보장해주는 것만으로는「베긴」 의 이스라엘 측이 만족할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미국 대표단이 잘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나는 또 「베긴」 의 팔레스타인인 자치정부 구성제안이 매우 대담하고 만족할만한 것이며 특히 「베긴」 이 시나이반도 전지역에 대한 이집트의 주권을 기꺼이 인정하려는 것은 건설적이라고 말했다.
「베긴」 이 나의 말을 가로채 이스라엘의 사활이 달린 안보문제에 관해 이집트인들은 상반된 견해를 갖고있다고 비난했다. 이것은 이스라엘에는 매우 중대한 문제였다.

<며칠이 걸려도 좋다>
「베긴」은 이스라엘 군이 요르단강 서안으로부터 철수하거나 그 지역 거주 아랍인들의 정치적 지위를 향상시킬 수 있게 하려면 먼저 이 지역으로부터 이스라엘에 대한 군사적 공격이 성공할 수 없도록 보장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요르단강 서안으로부터의 전면철수란 이스라엘의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나는 양국간에 견해차이가 있음을 시인하고 바로 그 점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캠프데이비드에 모인 사실을 상기시켰다.
「베긴」 은 이어 그를 가장 괴롭히고 있는 문제인 시나이반도에 대해 이집트 땅 안의 이스라엘 정착촌은 가자지구와 이집트사이의 완충지대로서 필요하다는 종전의 입장을 설명했다. 「베긴」은 이 밖에 팔레스타인· 요르단· 시리아인 들을 제외시킨 이집트와의 단독협정문제를 거론했다. 그는 시나이 반도 문제를 먼저 매듭 지은 뒤에 「유데아」 와 「사마리아」 땅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 「베긴」은 언제나 요르단강 서안이라는 표현 대신 성경에 나오는 두 이름을 썼고 나는 그가 이렇게 함으로써 그 지역이 여호와가 유대인에게 준 약속된 땅이라는 생각을 불러일으키게 할 심산이라고 추정했다. 그는 또 이집트가 자국의 이익만을 위해서 행동했다는 인상을 주는 어떠한 협정도 「사다트」 가 완강히 거부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베긴」 이 이집트가 염려하는 바를 이해하고 있다는 사질은 고무적이었다.「베긴」 수상은 시나이반도가 비무장화되어야한다는 것은 믿고 있었으나 이스라엘이 그곳에 건설한 3개의 비행장은 3∼5년간 그들이 사용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그후 1개 흑은 2개는 이집트 관할하의 민간용으로 전환하되 이스라엘에게도 사용권을 계속 부여해야한다는 것이었다.

<요르단강서안 말썽>
자기로서는 1개를 미군기지로 사용하는 것을 찬성한다고 했다. 우리는 그러한 제의를 예상하고 있었다. 나는 미국이 중동의 심장부에 군사기지를 보유하기를 원하지 않지만 그것이 평화를 위해 필요하고 또 이스라엘과 이집트 양측이 그것을 희망한다면 그 의견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베긴」 은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에 대한 주권문제는 거른 없이 남겨 놓도록 하고 약간의 이스라엘 군을 그곳에 주둔시켜야 한다고 되풀이 주장했다. 그는 이스라엘 군이 완전히 철수하면 24시간이내에 PLO(팔레스타인해방기구) 의 테러분자들이 그 지역을 차지할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요르단강 서안의 팔레스타인인 들이 자치권을 갖도록 하는데는 기꺼이 응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언제나 「전적인 자치권」이라는 표현을 썼다 (협상기간 중 우리는「자치권」 의 정의를 내리기 위해 하룻밤 여러 시간을 소비했지만 결론을 얻지 못했다).
나는 이번 회담결과를 공식 서명한 조약으로 남기고 싶다는 말과 함께 그 전례로 나토협약, 한미방위조약, 뉴질랜드 및 오스트레일리아· 일본 등과의 조약 등을 열거하기도 했다.
그 다음 우리는 정말로 까다로운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 나는 「베긴」 에게「사다트」 가 시나이반도의 어느 곳에도 이스라엘 정착촌을 남겨두는데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다트」로서는 시나이의 완전한 주권이란 이스라엘 거주자들이 그곳에 한 명도 남아있지 않는 것을 뜻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베긴」 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이 문제에 관해 내가 실수를 범했으며 이스라엘이 다른 문제에서 양보하면「사다트」 의 마음이 변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또 다른 심각한 견해차이는「전쟁에 의한 점령지의 주권불인정」 을 규정한 유엔결의안242호에 관한 것이었다. 아랍인들은 모두 이 원칙의 적용을 이스라엘이 어떤 조약에서든지 인정하도록 요구할 것임이 확실했다. 「베긴」 도 이를 잘 알았고 유엔결의가 좋은 원칙이라고 말했으나 「전쟁」 이라는 단어 앞에 「호전적」 이라는 수식어가 삽입되는 경우에만 동의하겠다고 했다. 이것은 선제공격에 의한 전쟁과 방어를 목적으로 상대방을 막기 위한 전쟁을 구별하자는 뜻이었다.
그는 이스라엘이 이웃 아랍국들로부터 공격을 당했으며 자체방어로 차지한 땅은 점령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팔레스타인 인들의 문제도 심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즉 이스라엘의 지배가 끝나면 그들은 어떻게 자신들을 통치할 것인가. 인접 아랍국가에 흩어져 살고있는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얼마나 그들의 고향으로 돌아가도록 허용할 것인가. 그리고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에 있는 이스라엘 정착촌들의 장래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문제들에 대해 날카로운 의견대립이 있었다.
이 문제들이 아랍인들에게는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했다. 이스라엘의 안보와 팔레스타인의 권리, 이 양자는 화해시키기 어려운 결정적 요구들이었다.

<2시간 반 겉돈 얘기>
「베긴」은 유엔결의안242호의 모든 규정이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에 적용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려 했다. 그는 또 시나이의 정착촌과 비행장 문제가 평화조약서명이전에 해결되어야 한다는 데도 기꺼이 응하려 하지 않았다. 나는 그의 견해에 반대의견을 분명히 밝혔으나 첫날밤 논쟁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지는 않았다. 「베긴」은 되풀이하여 요르단강 서안의 팔레스타인 인들에게 「전적인 자치권」을 약속했으며 나는 그들이 얼마나 많은 자유를 누릴 수 있겠느냐고 다그쳐 물었다. 그는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이민과 이스라엘의 안보에 관련된 문제 이외에는 그들의 자치권이 행사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모두 그럴듯하게 들렸지만 이스라엘 측은 나중에 팔레스타인 인들이 결정하는 거의 모든 중요한 문제에 대해 거부권을 요구했으며 도로건설과 급수문제까지도 이스라엘의 안보에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2시간 반에 걸친「베긴」과의 첫날대화는 비고무적인 것이었다.
나는「베긴」이 캠프데이비드에 무엇인가 새로운 제안을 갖고 올 것을 기대했으나 그는 종전의 이스라엘 입장을 고수한 채 같은 주장만을 되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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