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In&Out 레저] 여름이 가는 길목, 봉화 청량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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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량산 금탑봉에 있는 어풍대에서 내려다본 청량사 전경. 그 뒤로 연적봉·탁필봉·자소봉 등 청량산의 봉우리들이 보인다.

'사람들 말하기를 독서는
산을 유람함과 같다 하는데,
이제 보니 산을 유람하는 것이
독서와 비슷하구나
(讀書人說遊山似/今見遊山似讀書).'

평생토록 수없이
청량산(淸凉山.경북 봉화군)에 오른
퇴계 선생이 남긴 시의 일부다.
태백산 황지 연못에서 시작된 낙동강은
오늘도 '맑고 서늘한' 물줄기를
봉화 땅에 적신다.
세계적 희귀종인 열목어가 서식하는 곳.
전국 최대의 송이 주산지.
한때 '춘양목'이라 불리던
금강소나무가 하늘을 찌르던 곳,
그 청정의 땅이 봉화다.

봉화=글.사진 성시윤 기자

경북도립공원인 청량산. 해발 870m로 그리 높은 산은 아니다. 그러나 청량산을 걸을수록 감탄이 흘러나오며, 발품을 쉬고 있자면 앉은 곳마다 이야기가 넘친다. 한때 27개의 암자를 거느린 불국토였으며, 통일신라 때 명필 김생, 그리고 대학자 최치원이 공부했던 곳. 조선시대에는 퇴계 선생이 청량산에서 학문의 기초를 닦았고, 퇴계 이후로 선생의 학문과 인품을 흠모하는 후학들이 성지 순례하듯 올랐던 산이니 그럴 수밖에. 매표소에서 2.8㎞를 들어가 산행 기점인 '입석'에서 등산화 끈을 조여 맨다.

외유내강형의 산

"청량산은 외유내강형의 산이라고 할 수 있어요. 언뜻 보면 부드러워 보이지만, 속으로 들어가면 이내 암산(岩山)입니다. 그래서 퇴계의 학문을 청량산에 빗대곤 하지요."

길벗으로 동행한 청량산박물관 학예연구사 정민호씨의 설명이다. 청량산 12봉 중 하나인 금탑봉(金塔峯.620m)에 오르니 청량사의 부속 암자인 응진전(應眞殿)에 우선 닿는다.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사연을 떠올리게 하는 곳이다. 고려 말 공민왕은 정략결혼 차원에서 원나라 노국공주와 결혼한다. 공주는 고려인을 자처하며 공민왕을 진심으로 도와 고려 백성들의 사랑을 받는다. 아쉬운 점이라곤 결혼한 지 8년이 되도록 아기가 안 생긴다는 것이었다. 왕은 중신들의 간청을 못 이겨 후궁을 얻으나, 이를 두고두고 미안해 했다 한다. 이후 부부는 홍건적의 침입 때 개경에서 피난 와 석 달 정도를 안동에서 지낸다. 공주는 이 기간에 응진전에 와서 기도를 드렸다 하니 기도의 내용은 짐작이 간다. 개경으로 돌아간 뒤 공주는 임신을 하나 난산 끝에 숨지고, 이후 공민왕은 마음의 병을 얻어 굴절된 말년을 보냈다는 것이다. 응진전의 16 나한상 중에는 노국공주를 닮은 것이 있어 지금도 기묘함을 느끼게 한다. 어쨌든 봉화에서는 현재도 공민왕과 공주를 위해 동제를 지내는 곳이 많다 한다. 굽이굽이 맺힌 사연을 듣자니 끝도 없는 것이 청량산이다.

청량산의 '꽃술' 청량사

길은 금탑봉을 휘감으며 어풍대(御風臺)에 닿는다. 청량산 전망대 중 가장 풍광이 빼어난 곳이다. 청량산의 뭇 봉우리들이 빙 둘러 연꽃잎 마냥 하늘을 향해 있고, 그 중앙에 꽃술에 해당하는 청량사가 앉아 있는 장관이 펼쳐진다.

예서 조금 더 가면 김생이 글씨 공부를 했다 하는 김생 굴, 퇴계가 공부하던 자리에 후학들이 세운 청량정사(淸凉精舍) 등 허다한 유적을 만난다. '산을 유람하는 것은 독서와 같다'는 시구의 뜻을 알 듯 모를 듯한데, 어쨌든 지금 사람들은 선인들 흔적을 따라 걸으며 부지런히 청량산을 '읽을' 만하다.

***여행정보

지난해 6월 청량산 입구에 청량산박물관(054-672-6193)이 생겼다. 청량산을 배경으로 한 문화 및 자연 유산에 대해 알 수 있는 곳이다. 관람료 무료. 다음 카페의 '아름다운 청량산'(cafe.daum.net/dmltkdqhd), '청량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cafe.daum.net/chrsan)에서도 청량산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청량산도립공원 관리사무소 054-679-6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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