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못벗은 짝퉁 왕국 오명] 꼬리 밟혀도 몸통은 멀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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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안양경찰서 수사관이 이달초 압류한 가짜 루이비통 가방 등을 조사하고 있다. [중앙포토]

소매상에게 물건을 보내는 택배 서류의 보내는 사람 주소도 거의 엉터리다. 때문에 도매상을 추적하기 힘들고, 그 뒤의 제조업자에까지 파악하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대형 도매상은 또 창고를 전국에 흩어 놓고 그 중 하나가 적발되면 발각된 창고가 전부이며 창고 관리 직원이 사장이라고 진술하도록 하고 있다. 도마뱀 꼬리자르는 식이다. 창고는 관리 직원이나 제3자 명의로 임대해 도매상이 누구인지 알 수 없도록 해놓고 있다. 서울지검 북부지청은 지난 4월 캘빈 클라인.리바이스 청바지 등의 위조품 28000여벌 37억여원어치를 팔려 한 업자를 구속했다. 조사 결과 지난해 11월 발견했던 가짜 청바지 창고가 이 조직의 여러 창고 중 하나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창고 관리 직원은 검찰에서 자신이 사장이라고 했었다. 북부지청은 또 최근 온라인 짝퉁 판매상을 오전에 조사하고 돌려보냈다. 이 상인도 자신이 사장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바로 그날 오후에 다른 업체를 단속하러 나갔다가 오전에 사장이라던 상인이 직원으로 일하고 있는 것을 현장에서 발견했다. 검찰은 이 업체가 대규모 유통 조직의 한 부분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이처럼 대형 도매상은 베일에 가려 있고, 소형상인만 잡히고 있다. 처벌도 벌금 수준에 그친다. 북부지청이 올들어 7월말까지 197명을 단속했으나 두 명만 구속됐다.

동대문이나 이태원 등 짝퉁 상점이 몰린 곳에서는 상인들 간에 단속 정보를 주고 받으며 유기적으로 움직이기도 한다. 검찰 관계자는 "동대문의 패션 상가에서는 한 때 음악 방송에서 클론의 '쿵따리 샤바라'를 틀어주는 것을 단속반이 떴다는 신호로 이용했다"고 말했다. 위조품 조사 전문업체인 마크로드는 국내 짝퉁 점포는 7000여개(노점 포함)에 이르고 판매액은 연간 3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마크로드는 외국 명품 업체의 의뢰를 받아 지난달 말 G 인터넷쇼핑몰을 하룻동안 조사했다. 가짜 제품을 파는 것으로 의심되는 온라인 가게 46곳을 찾아냈다. 모두 정가 수십만원짜리를 10만원 이하에 판매했다.

마크로드에 따르면 사업자등록증 없이 개인이 수시로 장터를 열 수 있도록 하는 A.G 인터넷쇼핑몰에서 특히 짝퉁이 많이 나돌고 있다. 이처럼 국내 시장에서 위조품이 줄어들지 않자 한국에 진출한 명품 업체들도 대응을 강화하고 있다. 명품 업체가 많이 회원으로 있는 주한유럽상공회의소는 올들어 지식재산권위원회 상근 직원을 늘렸다. 또 C 명품업체는 최근 경찰 출신을 위조품 조사 전담 직원으로 채용하기도 했다.

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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