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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정책, 여론을 무시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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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정부는 이달 말에 '헌법처럼 바꾸기 힘든 부동산 정책'을 내놓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헌법처럼…'이란 말은 7월 3일 김병준 청와대 정책실장이 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다음날 김 실장의 발언이 "지난주 제일 좋았던 뉴스"라고 뒷받침해줬다. 이에 앞서 6월 22일 김수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이 청와대 홈페이지에 쓴 '부동산 정책, 답이 있다'란 글에도 비슷한 문장이 보인다. 김 비서관은 이 글에서 "정권이 바뀌어도, 혹은 경기가 나빠져도, 심지어 천재지변이 나더라도 바뀌지 않는 원칙"으로 새로운 부동산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때부터 '헌법처럼…'이 청와대의 방침으로 정해진 모양이다. 김 비서관은 특히 새로운 길은 "실수요자는 보호하되 투기 이익은 환수하는 것"이라고 제시하며 "국민적 합의를 통해" 부동산 정책의 답을 찾아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기세로 볼 때 이달 말 발표될 부동산 정책의 내용이 예사롭지 않을 것 같다. 청와대와 관계부처, 여당인 열린우리당 관계자들이 함께 머리를 쥐어짜는 회의에서 엄청난 발언이 거침없이 등장한다고 한다. 기업의 업무용 부동산과 비업무용 부동산의 구분을 없애 업무용 부동산에 대해서도 높은 세금을 매기자는 주장까지 나온다는 것이다. 부동산 보유 자체를 징벌하겠다는 얘기나 다름없다. 행정수도 이전 등을 위해 토지를 수용할 때 현금 대신 채권으로 주자는 아이디어도 들려온다. 토지 수용대금이 다른 지역의 땅값을 올리는 데 사용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구차한 발상이다. "정치권의 저항을 불러올 수 있는 획기적인 내용이 담길 것"이라는 박승 한국은행 총재의 발언도 이런 분위기를 보여준다.

예고편으로 흘러나오는 정책의 강도도 약하지 않다. 토지거래 허가구역 토지의 전매 제한 기간을 6개월~1년에서 2~5년으로 대폭 늘리기로 했고, 1가구 2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율을 높이며 가구별로 합산해 부동산 세금을 매기겠다고 한다. 부동산 보유세 인상 시기를 앞당긴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런 것보다 훨씬 강력한 내용이 이달 말 발표될 본편에 실려 있다고 정부 관계자들은 말하고 있다.

걱정스러운 것은 이번 정책의 방향이 '실수요자 보호, 투기 이익 환수'로 정해져 있는 점이다. 실수요와 투기 수요, 실수요의 이익과 투기 이익을 어떻게 구분할지 의문이다. 간단하게 1가구 1주택은 실수요고, 2주택 이상은 투기적 수요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면 9억원이 넘는 1주택 소유자에 대해 보유세 등을 올리는 것은 어떻게 봐야 할까. 1주택자라도 비싼 집을 가지면 투기를 한 것이라고 보는 것인가. 투기를 경제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도덕적 개념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 아닌지 걱정이다. 부동산 이익은 불로소득, 투기적 이익이라고 매도하는 반(反)시장적 인식에 바탕을 둔 초법적 조치가 나와서는 곤란하다.

'국민적 합의'를 통해 부동산 정책을 만들겠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정부는 각종 공청회는 물론 인터넷을 통해 국민 여론을 듣겠다고 나섰다. 정책을 마련한 뒤에는 정부가 직접 광고까지 할 계획이다. 여론 수렴과 광고를 위해 43억7350만원의 예산까지 배정했다.

헌법에 버금가는 정책을 만들기 위해 국민적 합의를 구하는 것이라고 주장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국민적 합의, 보다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여론에 따라 만들어지는 부동산 정책이 어떤 모습일지 두렵다. 1주택 이상 주택 보유를 금지하자는 등 사유재산권을 침해하고 자본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주장이 이미 공청회나 인터넷 공간에서 나오기 시작한다. 여론이란 명분에 발목 잡혀 부자와 서민을 편 가르고 부자에 대한 질투로 가득한 정책이 나와선 걷잡기 힘든 상황이 닥칠 수 있다.

정부는 선진 사회로 도약하기 위해 이번 부동산 정책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한다. 헌법에 버금가는 정책을 만들겠다는 과욕이 거슬리긴 하지만, 정부가 좋은 의도로 정책을 마련하고 있다는 점을 의심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정책에서 중요한 것은 '좋은 의도'가 아니라 '좋은 결과'를 거둘 수 있느냐다. 부동산 정책의 목표는 여론과 국민 감정을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다. 부동산 시장을 망가뜨리지 않으면서 안정시키는 게 가장 중요한 목표여야 한다.

이세정 정책사회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