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 100대 드라마 ⑤여성] 45. 성의 정체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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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젠더(성전환)와 커밍아웃(동성애 드러내기).
남자 아니면 여자의 이분법적 사고에 익숙하던 2000년대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단어들이었다. 1994년 게이 인권모임 ‘친구사이’와 레즈비언 인권모임 ‘끼리끼리’의 발족으로 성적 소수자 인권 운동이 첫 발을 내디뎠지만 우리 사회의 인식은 더디게 움직였다. 심하게 표현하면 ‘동성애자=변태’식의 단선적 시각이 주류였다. 하리수(上)와 홍석천(下)은 성 정체성 문제를 공개된 장으로 끌어낸 주역들이다. 두 사람이 대중과 접촉이 잦은 연예인이었기에 파급력은 더 컸다.

‘이브가 된 아담’ 하리수의 등장은 가위 충격적이었다. 그는 남자로 태어났지만 성전환 수술을 통해 다른 성을 획득했다. 하리수는 여성들도 부러워할 만큼 빼어난 용모와 재능으로 연예인으로 성공하겠다는 자신의 꿈을 이뤘다. 특히 “가슴 성형수술을 한 뒤 후유증을 겪어 재수술했다” “사귀던 남자친구가 ‘너만한 여자도 없다’고 했다”는 식의 당당하고 적극적인 태도에 젊은층은 열광했다. 2002년에는 법원에서 성별 변경 판결을 받아 ‘2XXXXXX’라는 주민등록번호를 지닌 법적 여성으로 거듭났다. 물론 하리수가 소수자 인권 확립보다 성전환을 상업적으로 이용한 것에 가깝다는 비난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트랜스젠더가 ‘별종(別種)’이 아니라 ‘이종(異種)’임을 각인시킨 공만큼은 평가할 만하다.

하리수가 각광받은 데 비해 동성애자 홍석천은 한동안 방송 출연이 끊기는 등 고초를 겪었다. 트랜스젠더에게 비교적 관대했던 사회가 게이에게 냉담했던 이중성을 어떤 이들은 하리수와 홍석천의 외모 탓이라고 지적한다. 한국 사회가 이들로 인해 성 정체성 문제에 개안한 것은 사실이나, 진정으로 성적 소수자를 끌어안은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하리수가 성적 소수자 문제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끌어내지 못하고 단지 대중문화의 한 소비재로 그쳤다는 것이다.

성적 소수자 인권단체들은 일부 언론의 보도 태도도 꼬집는다. 에이즈와 동성애자를 연결짓거나 유년 시절에 받은 학대와 성폭행 후유증 등으로 동성애자가 된다는 식의 시각이 언론을 통해 확산된다는 것이다.

정신과 전문의 송현철 박사는“동성애나 트랜스젠더를 결정짓는 데는 개인의 경험이나 성향, 성장 과정에서의 학습 등 여러 요인이 작용하기 때문에 이들을 정신질환자로 보거나 윤리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올 들어 ‘끼리끼리’를 전신으로 하는 한국레즈비언상담소가 문을 열었다. 뒤이어 국내 최초로 레즈비언 인권운동단체들의 연합인 ‘한국레즈비언권리운동연대’가 발족했다. 성적 소수자들의 유일한 문화 행사인 ‘퀴어문화축제’도 올해로 6회째를 맞는 등 ‘관용하는 사회’를 향한 이들의 발걸음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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