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철희피고인에 「범행」미뤄 장여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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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63일만에 다시 법정에 선 장영자피고인은 1심때와는 많이 변해 있었다. 범행을 주로 남편인 이철희피고인에게 미루었고, 법정태도가 훨씬 당당해졌으며, 범행을 부인할줄도 알았고 때로는 정면으로 검사와 맞서 다투기도했다.
능란한 말솜씨만은 그대로였지만 1심때처럼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며 애처롭게 울지도 않았다.
이날 장피고인은 자신은 남편의 뜻이 숭고해서 협조만 했을 뿐이고 조국에 헌신하겠다는 남편의 좋은 의도가 철두철미한 결벽증때문에 이런 결과를 가져와 원통하고 절통하다고 단한번 울먹였다.
이에 장피고인은 감정이 격했던지 『본인은 지난 세월 두 아이의 어머니로서만 살아왔을뿐 여자로서는 불행했었으나 이장군(남편)을 만나 비로소 안주했고 행복을 느껴 남편을 무한히 사랑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검사가 『수사과정에서 진술내용을 모두 읽어주지 않았느냐』고 질문하자 『그런데요. 구치소에서 많이 생각해 봤는데요. 용어에 차이가 있는것 같아요. 가령 「받았다」고 말하면 「편취했다」로 받아들이고요』라며 「용어의 차이」를 잘 몰랐다고 1심에서의 진술을 교묘히 부인했다. 1심에서 모든 증거에 동의하지 않았느냐는 검찰질문에도 「증거동의」의 뜻을 몰랐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날 장피고인은 『…했읍니다』로 일관하던 1심때와는 달리 거의 말끝을 『 는데요』라는 식으로 답변했다.
○…장피고인의 큰소리는 여전했다. 『아직 부도를 낸것도 아니고 나가서 피해관계를 해야할 의무가 있는 사람인데 지금 주는 밥먹고 앉아 있을때가 아니다』고 말하고 자신의 구속이 『뭔가 잘못된것 같았다』며 애교있게 웃어 방청객의 폭소를 자아냈다.
또 검찰이 비정상적인 어음거래를 추궁하자 『경제는 욕구충족인데 서로의 욕구를 충족시켰으므로 하나도 비정상이 아니다』고 했고 피해자들에 대해서는 『검찰이 우리를 구속해 피해가 생겼다』고 주장했다.
장피고인은 이밖에 『달러를 집에 갖고 있었다는게 못내 가슴아프다. 이점은 속죄한다』고 외환관리법 위반부분만 시인하고 『그렇지 않았으면 구속될리가 없다』며 사기·배임중재·업무상배임부분은 모조리 부인했다.
특히 증권전문가가 왜 실패해서 이꼴이 됐느냐고 검찰이 추궁하자 『뭐 실패한게 있나요. 잘 되어가는데 수사관이 밤중에 끌고 들어와 이렇게 된거지요』라고 응수했다.
○…장피고인은 문상익변호사가 『기업에 그런 저리로 자금을 제공해도 되느냐』고 묻자『기업이 고리자금을 쓰면 위험한데도 돈을 빌려주는 사람도 정신빠진 사람이지요』라고 답변했고 수사기록에 구속당시 어음결제능력이 없었다고 되어있다고 하자 『큰 착각이겠지요. 경제능력이 없었다면 어떻게 구속전날까지 결제가 됐겠읍니까. 뭐가 잘못돼도 분명히 많이 잘못된 얘기지요』라고 했다.
또 문변호사가 공영토건의 변태수상무가 지난해 11월 고발하겠다고 말한적이 있느냐고 묻자 『변상무는 상무입장이고 본인은 회장입장인데요』라고 간단히 부인했다.
이밖에 김상희검사가 사기를 해놓고 왜 속죄하지않느냐고 묻자 『물의를 일으킨데는 속죄하지만 사기했다고 속죄하는것은 아니다』고 말하고 『부부가 뒤늦게 사기나 하려고 만난줄아느냐』고 반문.
○…이철희피고인도 1심때보다 훨씬 능동적으로 답변이 길었고 비교적 범행에 대한 설명이 많았다.
성민경차장검사가 당시 부부의 재산이 3백억원이었다면서 그돈으로 사업을 하지 뭣때문에 변칙적이고 변태적인 어음거래를 해서 시끄럽게 했느냐고 묻자 그는 『결혼한지 불과 1년인데 집사람이 애써 번돈을 가로채 이것저것 할 생각은 없었다』고 답변.
장피고인은 이피고인을「남편」 「이장군」 「우리집 양반」등 여러 가지로 불렀으나 이피고인은 장피고인을 「집사람」으로 일관해서 호칭.
이들 부부는 1심때보다 훨씬 짜증이나 신경질적인 반응이 많았는데 자신들의 뜻과 다른 말이 나오면 『아이고 아닙니다』라는등 짜증을 부렸고 변강우피고인이 『특수자금이라 햇다』고 진술할 때에는 안타깝고 원망스럽다는 표정으로 부부가 마주보며 고개를 가로젓기도 했다.
○…이철희·장영자 부부의 태도변화를 지켜본 검찰측은 상오 공판이 끝난후 법정을 나서며 『장피고인이 재생의 욕망이 생겨 남편인 이피고인에게 법행을 미루기로 한것같다』고 분석하고, 변호인들의 입김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검찰은 장피고인이 범행을 부인하면 지금이라도 곧 석방되어 다시 주식투자등의 방법으로 일어설수 있다는 미련을 가진것 같다고 쓴 웃음.
○…이·장부부의 항소심 첫날은 2심에서 새로 선임된 변호인들이 특히 자세하고 긴 질문으로 이채.
안병수변호사는 이·장부부를 상대로 40여분간 신문했고 서정각변호사는 변강우피고인등 공영관련피고인을 위해 40분 ,전병덕변호사는 몸이 불편한 공덕종피고인을 상대로 50분간이나 신문.
이들은 신문내용을 차례로 읽어가며 진행했는데 안병수변호사는 『일심때와의 중복을 피해달라』는 검찰의 합의를 들었으나 전병덕변호사는 두달전까지 서울고등법원장을 지낸 전관예우를 했음인지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았다. <권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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