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고사격 미안" … 해상서 석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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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장비 고장으로 북방어로한계선(NLL) 40여 마일을 침범했던 강원도 동해항 선적 오징어잡이 어선 성진호(29t급)가 북한 어업지도선으로부터 검문검색만 받은 뒤 해상에서 2시간40여 분 만에 풀려났다.

북측이 NLL 이북 해역을 침범한 우리 측 어선을 항구로 나포하지 않고 해상에서 간단한 조사를 마친 뒤 풀어주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실제 북한은 4월 13일 만취한 채 속초항 소속 유장망 어선 항만호(3.9t급)를 몰고 월선한 황모(57)씨에 대해 인근 항구로 나포해 조사를 마친 뒤 다음날 돌려보냈었다.

해경 관계자는 "이 같은 북측의 신속한 귀환 조치는 광복 60주년 기념 8.15 민족대축전 등 최근 일고 있는 남북 화해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6명의 선원이 탄 성진호가 북측 배타적 경제수역을 침범한 것은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고장 때문.

13일 오후 1시쯤 대화퇴 어장 조업을 위해 묵호항을 떠난 성진호 선장 최모(50)씨는 14일 오전 2시쯤 GPS가 고장난 것을 알았으나 평소 이 해역을 자주 항해한 경험을 믿고 나침반으로 항해를 계속했다.

오전 11시까지 9시간 동안 배를 몰았지만 사방에 조업하는 어선이 발견되지 않자 그제야 '항로 착오'라고 판단한 최씨는 엔진을 끈 채 주변 해역을 통과하는 선박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자 오전 11시30분쯤 인공기를 게양한 북한 어업지도선이 사이렌을 울리는 등 정선 신호를 보내며 50여m 떨어진 곳까지 접근해 왔다. 당황한 최씨가 엔진 시동을 거는 순간 '탕탕'하는 총성이 두 번 울렸다.

실탄 두 발 중 한 발이 배 중간 부분에 있는 조타실 창문을 관통했으나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

이어 낮 12시20분쯤 북측 승선원 6명이 성진호에 올라탔으나 의외로 친철했다. 검문검색을 하면서 일행 중 1명은 "날씨도 더운데 고생한다. 그늘에 와서 앉아라. 경고사격을 하게 돼 미안하다. 좋은 시기에 다시 만나자"며 선원들을 오히려 안심시켰다. 불법 조업 혐의가 없고 GPS가 고장난 것을 확인한 북측 승선원이 어딘가에 무전으로 교신을 하고 난 뒤 오후 3시쯤 "남으로 돌려보내 주겠다"고 말한 뒤 10여 분간 항로를 유도해 주기까지 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낸 선원들은 15일 낮 12시쯤 묵호항으로 무사히 귀환했다.

선장 최씨는 "총성이 나는 순간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막상 우리 배에 옮겨탄 북한 승선원들이 마실 물도 주며 친절하게 대해줘 새삼 달라진 남북 간의 분위기를 느꼈다"고 말했다.

동해=홍창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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