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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총수 3인〃이 부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재계 총리-.
한국재계의 총 본산인 전경련 회장을 두고 일컫는 말이다.
뭐니뭐니해도 전경련은 가장재력과 영향력 있는 기업인들을 망라하고있는 순수민간경제단체로서 한국경제계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전경련 회장이 누리는 명예나 그 영향력으로 보아 재계총리라 불릴 만 하다.
요즘 재계에선「후임 총리」의 물망에 오르고 있는 몇 몇 중진급 재계 인사들을 놓고 하마 평이 분분하다.
지난 77년 4월 이후 6년간 전경련 회장을 내리 맡아오면서 적극적으로 많은 일들한 정주영 회장이 내년 2월이면 그 세 번째 임기를 다하기 때문이다. 경제계에선 정 회장이 더 맡아해 주기를 희망하고 있지만 정 회장은 고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경련 회장의 필수조건인 재력·행동력·관록 면에서 정 회장에 비길만한 후임이 아직 부상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정 회장은 현재 대한체육회장이라는 또 다른「큰일」을 맡고 있다. 대한체육회 회장직은 다른 때와는 달리 올림픽을 앞두고 있어 그 역할이 막중하다. 정 회장은 이미 재계인사들에게 물러날 뜻을 밝혔다고 한다.
전경련 회장은 투표보다 재계의 여망에 의해 추대되는 것이 관례다. 따라서 재계원로들을 중심으로 누가 좋겠다는 여론이 돌고 그것이 절충·조정되어 총회에선 형식적인 선출만 한다. 다른 경제단체와는 달리 관의 입김도 적다.
때문에『내가 회장이 되겠다』고 적극적으로 나설 수 없는 분위기다. 한마디로 경제계의 대다수가 양해해야 회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지난 5일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는 원용석 전경련 부회장이 점심을 내는 형식으로 전경련회장단 간친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정주영 회장을 비롯, 요즘 재계에서 후임 회장의 물망에 가장 빈번히 오르내리고 있는 조중훈 한진 회장, 구자경 럭키 회장, 이동찬 코오롱 회장 등 세 사람의 재벌총수와 김용완 전경련 명예회장, 김용주 전방 회장, 이정림 대한선박 회장, 정인욱 강원산업 회장 등 영향력이 큰 재계원로들이 참석할 예정이었으므로 어떤 형태로든 후임회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하여 많은 관심들이 모아졌었다.
그러나 정작 간친회에는 조·구·이 세 사람의 재벌총수「트로이카」중 이동찬 회장만이 참석했고 원로 급 중에서도 이병철·김용완·김용주 회장 등이 모두 불참, 잔뜩 관심을 가졌던 사람들에게는 김빠진 간친회가 되고 말았다.
간친회 석상에서도 모두들 시종일관 스포츠 이야기만을 화제로 삼아 후임회장 이야기는 한마디도 거론되지 않았다 한다.
이는 이날 간친회 직전 가졌던 회장단 업무보고 회의석상에서 정주영 회장 자신이 『당분간 회장이야기는 거론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고 밝힌 탓도 있었지만 누구나 양해할 정도로 뚜렷한 후임자가 없어 후임회장 문제가 그만큼 미묘하다는 뜻도 된다.
재계에서 오가고 있는 평을 종합해보면 역시 조중훈·구자경·이동찬 세 사람의 재벌총수가 가장 유력한 후임회장의 물망에 올라있다.
박태준·김용주씨는 다른 의미에서 거론되고 있다.
전경련 회장은 큰 그룹에서 하는 것이 좋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제3의 인물로서 물망에 올라 있는 것이다.
박태준씨는 10·26후 재계개편 때도 전경련 회장으로 물망에 올랐으나 본인이 강력히 고사했다한다.
조중훈 한진 그룹회장은 무엇보다도 자신이 사업을 일으켜 키워 온 창업세대이고 통이 큰 보스기질도 있으며 또 한진 그룹의 주요업종이 업종인 만큼 국제적인 감각과 시각을 갖춘 것이 강점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특히 최근 국산전투기의 조립생산, 대통령 아주 순방시의「수석승무원」역할 등으로 각별히 「부상」하고 있다는 것도 재계일부에서 조중훈 회장을 후임 전경련 회장으로 꼽는 중요한 이유중의 하나다.
또 조중훈 회장은 그간 정주영 회장이 벌이는 전경련 일에 협조도 적극적으로 했고 또 중요한 사업상의 일은 꼭 정주영 회장과 상의하는 등 정주영 회장과도 좋은 사이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한진 그룹의 업종이 아직 다양하지 못해 한진 그룹의 총수가 전경련을 이끈다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보는 사람들이 적잖은 것도 사실이다.
자신이 이끄는 그룹의 재력과 업종의 관점에서만 본다면 구자경 럭키회장을 전경련의 차기회장으로 꼽는 사람들도 많다.
럭키는 누가 보아도 한국을 대표하는 그룹의 하나로서 손색이 없고 또 구 회장의 소탈하고 서민적인 성격이 재계의 리더로서 큰 결함이 없다는 평을 듣고 있으며 특히 최근 럭키 그룹의 전경련에 대한 기여도 (납부하는 회비)는 현대그룹에 못지 않게 커졌다.
또 구 회장은 정 회장과 무척 가깝기도 하다. 반면 구 회장은 창업주가 아닌 2세 오너라는 것이 전경련회장으로서의 가장 큰 약점이다.
적어도 지금까지 전경련은 창업주가 이끈다는 것이 분문율로 되어왔기 때문이다. 현재 세대교체가 서서히 이루어지고 있지만 아직은 한국 재개의 주류는 창업세대다.
또 재계일부에선 구 회장이 공식석상에서의 발언에 지나칠 정도로 거침이 없고 또 지난해 개인소득세납부 액 랭킹50위안에 들지 않았다는 것을 약점으로 들기도 한다.
전경련 회장은 사재를 연간3억∼4억원정도 써야하는 자리다.
한편 그룹의 재력이나 업종면에서 역시 약점이 있지만 현재 경영자 총 협회장을 맡고있는 이동찬 코오롱 그룹회장도 전경련 회장 물망에 의외로 강력하게 오르내리고 있다.
1·5세대 경영인임을 자처하는 이 회장은 실제 창업세대와 다름이 없고 또 나름대로의 감각과 뚜렷한 주관을 지니고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다. 또 적극적인 성격으로 경영자 총 협회를 중심으로 많은 일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재계에선 아직 이 회장이 관록 면에서 전경련을 이끌기엔 좀 이르다는 의견도 있다.
이 같은 장·단점들을 세 사람 모두 지니고있기 때문에 재계의 어느 누구도 선뜻 어느 한 사람을 차기 전경련 회장으로 내세우지는 못한다. 그래서 절충 안으로서 제3의 인물이 부상할 가능성이 없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정주영 회장이 만약 전경련에서 손을 떼고 누가 그 자리를 잇든 간에 현 정 회장이 워낙 일을 폭넓게 벌이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후임회장은 상대적으로「작은 거물」회장이 되리라는 것에 재계는 모두 일치된 생각을 갖고 있는 듯 하다.<김수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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