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60년] 동아시아 평화 열쇠 쥔 21세기 중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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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말 미국 대학교육협의회의 개스턴 케이퍼턴 회장은 깜짝 놀랐다. 대학 교과 과정에 중국어 강좌 개설을 희망하는지 물었더니 무려 2400개 고교가 손을 든 것이다. 케이퍼턴은 "상상을 초월한 숫자에 정신이 바짝 들었다"고 토로했다. 미국 내 중국 붐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중국의 부상은 세계 최강국 미국을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눈부신 경제성장이 가장 큰 배경이다. 1981년 덩샤오핑(鄧小平)은 3단계 전략을 세웠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을 90년 500달러, 2000년 1000달러, 2050년 4000달러로 잡았다. 그러나 장쩌민(江澤民)은 덩의 전략을 수정해야 했다. 20년 넘게 연 평균 9%대의 고속 성장이 계속됐기 때문이다. 지금 추세라면 덩의 2050년 목표는 2020년께 달성될 전망이다. 미국계 투자회사인 골드먼 삭스는 2007년 독일, 2015년 일본, 2039년엔 미국을 차례로 제치고 중국이 세계 최대의 경제 대국으로 올라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경제력을 토대로 중국의 군사력도 팽창하고 있다. 올해 중국 국방비는 299억 달러. 5년 전의 두 배다. 그러나 이를 액면 그대로 믿는 사람은 없다. 중국의 국방비는 발표치의 세 배 이상이라는 것이 서방의 인식이다. 미 국방보고서는 올해 중국 국방비의 실제 규모를 900억 달러로 추산했다.

중국은 우주 강국의 꿈도 키우고 있다. '바다를 놓쳐 근대를 잃었다'는 반성 때문이다. 2003년 유인 우주선 발사에 성공한 중국은 2010년 달 착륙, 2020년 우주 정거장 건설이라는 장기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19세기'아시아의 병자'였던 중국이 21세기를 '중국의 세기'로 바꿔놓겠다는 야심에 차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미국과 견줄 상황은 아니다. 99년 코소보 사태 당시 미국의 오폭으로 유고 주재 중국 대사관이 완파됐지만 중국은 변변히 항의조차 하지 못했다. 미국의 절대적인 지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힘을 키우는 게 우선이라고 판단했다. '도광양회(韜光養晦, 빛을 감추고 어둠을 키운다)' 전략이다. 몸을 낮추고 실리를 챙기는 외교다. 하지만 북핵 6자회담 중재에서 보듯이 상황별 '개입'에도 서서히 나서고 있다. 이른바 '유소작위(有所作爲)' 전략이다. 필요할 경우 행동에 나선다는 것이다.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이 천명한 '화평굴기(和平起)'전략도 같은 맥락이다. 세계 평화를 강조하긴 했지만 앞으로 중국도 적극적인 역할을 맡겠다는 선언이다.

중국이 미국과 어깨를 겨룰 만큼 힘을 키운 뒤 어떤 행보를 보일지는 아직 점치기 어렵다. 5월 일본을 방문한 우이(吳儀) 국무위원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와의 면담을 일방적으로 취소했다. 중국의 선택에 동북아의 평화가 달려 있다.

베이징=유광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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