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 '국가범죄 시효 배제 특별법' 발언 파문] 과거 흔들기 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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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밝힌 과거사 정리 대상은 폭넓다. 일제시대 친일 행위를 비롯해 해방 이후 과거 정권들에 의해 자행된 국가권력의 인권침해.불법 행위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정리 방법도 제한을 두지 않았다. 민.형사상 시효는 배제 또는 조정하고, 확정판결에 대해서도 재심을 허용하자는 입장이다. 시간과 대상 모두 열어놓다시피 했다.

이 같은 구상은 이미 국회를 통과한 두 개 법의 '미비점'을 보완하려는 의도인 것으로 보인다. 국회는 지난해 12월과 지난 5월 '일제 강점하 친일 반민족 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친일진상규명법)'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기본법(과거사기본법)'을 통과시켰다. 여기에서도 구제되지 못하는 피해자에 대한 배상과 보상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제안한 시효특별법은 친일진상규명법과 과거사기본법의 보완입법 성격이 있다.

이들 두 법이 통과되는 과정에서 정치권 일각에선 "절충 과정에서 중요한 조항들이 빠져 법 취지가 훼손됐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았다. 그중 하나가 확정판결이 난 사건은 사실상 재조사가 불가능하다는 대목이다. 이 때문에 ▶동백림 사건▶민청학련 사건▶인혁당 사건▶5.18 민주항쟁 등이 진상조사 대상에서 제외됐다. 일부 의원은 확정판결 사건에 대한 재심사유 제한 규정을 삭제하는 내용의 과거사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결국 대통령의 제안은 이 같은 움직임을 지원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도 배상.보상 문제에 대해 "과거사법 34, 36조에 배상.보상에 관한 명확한 규정이 없어 이를 보완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심 문제에 대해서는 "확정판결이 난 건에 대해서도 재심이 가능토록 해 억울한 피해자가 없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라며 "과거사법에서도 위원회가 재심을 결정하면 할 수 있도록 열어뒀지만 부족하다는 여론이 있어 보완 필요성을 얘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권력 남용 범죄에 시효 배제 논란 가능성=법률상 권리의 소멸을 의미하는 '시효'는 현행 과거사법 어느 조항에도 규정돼 있지 않다. 따라서 시효 배제 또는 조정 문제는 특별법에 규정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는 곧바로 위헌 논란으로 이어진다. 김 대변인도 이를 의식한 듯 시효 적용 배제 대상에 대해 "명백한 국가의 범죄 행위 혹은 국가권력의 공격 행위로 드러났거나 국가권력에 의한 명백한 조작 행위로 밝혀진 경우"라고 설명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집권시기의 불법 도청 사건이 포함되느냐도 논란 대상이 될 것 같다. 현행 과거사법은 대상이 되는 시기가 해방~권위주의 시대다. 김 대변인은 "권위주의 시대를 어디까지 봐야 할 것이냐에 대한 문제가 남아 있지만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국정원의 발표로 국민의정부 시기에 불법 도청이 이뤄진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에 '명백한 국가의 범죄 행위'라는 조건이 성립된다는 해석이다.

박소영.김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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