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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폐합 투표 이후 제주… 민심 들끓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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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지금 평화의 섬 제주에서는 많은 관광객이 찾아들어 늦더위 속에 막바지 피서를 즐기고 있지만, 제주도 내부사정을 들여다보면 민심이 용광로처럼 끓어 언제 표출될지 모르는 상황에 처해 있다.

이는 7월 27일 실시한 이른바 제주도 행정계층 구조개편과 관련한 주민투표 때문이다. 제주도청은 혁신안과 점진안 등 두 가지 안을 주민투표에 부쳤다. 혁신안은 현재의 기초자치단체인 4개 시.군(제주시.서귀포시.북제주군.남제주군)의 자치권을 폐지하자는 것이고, 점진안은 현재의 자치단체인 도와 4개 시.군을 그대로 유지하자는 안이다.

유권자의 36.7%가 참가한 투표 결과 2개 시.군(제주시.북제주군)에서는 혁신안이 우세했고, 다른 2개 시.군(서귀포시.남제주군)에서는 점진안이 우세한 가운데 제주도 전체로는 혁신안(57%)이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몇 가지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우선 이번의 주민투표는 4개 시.군의 기초자치권을 폐지하는 것인데, 지방자치법상 법인인 자치단체의 폐지 여부가 과연 주민투표의 대상이 될 수 있느냐가 논란이다. 제주도 내 4개 시장.군수들은 자치권이 있는 자치단체로의 통폐합은 주민의 선택에 달려 있지만 광역자치단체장인 도지사가 발의해 기초자치권을 폐지하는 것을 묻는 주민투표는 권한 외의 행위로 보고 있다. 이에 관해서는 현재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청구가 제기됐다.

둘째는 어쨌든 주민투표를 실시한 결과, 별개의 법인격을 가진 4개 시.군의 독립된 의사 즉, 시.군별로 선택된 안이 무엇보다 중요함에도 4개 시.군의 투표수를 단순 합산해 도 전체적으로 비율을 계산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제까지 수차례 실시한 도농통합복합시의 경우에서도 모두 시.군별 찬반 의사에 따라 자치단체의 폐지나 통합이 결정된 것과도 완전히 상반되는 것이다. 제주도와 행정자치부에서는 도민 전체의 의사를 물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나, 실제론 해당 법인의 의사가 다른 법인의 의사에 의해 좌우되는 괴상한 논리에 빠져들게 된다.

셋째는 이번 투표의 성격상 정당성과 대표성이 미흡하다는 점이다. 이번 주민투표는 사람을 뽑는 선거가 아니고, 제주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차대한 정책을 선택하는 투표였다. 그래서 행정자치부 장관이 선거 며칠 전 제주도를 방문해 투표율이 50% 넘어야 정당성이 확보된다고 강조하기까지 했다.

유권자의 3분의 1 이상이 투표하면 개표가 가능하다는 법적 요건을 차치하고라도, 과연 제주 장래를 좌우하는 사안에 불과 36.7%의 투표율에 혁신안 찬성률 57%로 정당성과 대표성이 있다고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혁신안에 찬성한 숫자는 전체 유권자의 20% 남짓에 불과하다.

주민들로 이뤄진 법인인 자치단체의 의사를 무시하고 제주도에서만 기초자치권 폐지를 강행한다는 것은 지역주민의 의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지방자치법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에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돼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 바란다.

강상주 서귀포 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