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민족축전 위해 대학을 무단 점거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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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서울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에서 8.15 민족대축전 행사를 마친 한총련 학생과 통일연대.민중연대 회원들은 서울 회기동의 경희대로 이동해 '자주.평화.통일을 위한 결의의 밤' 행사를 하고 숙박했다. 교내 시설의 집회 장소와 숙소 사용을 불허한다는 학교 측의 방침을 묵살한 행동이다. 이들은 연세대에서 집회를 열 예정이었으나 면학 분위기 저해와 시설 훼손을 우려한 학교본부.총학생회.교수평의회의 반발에 부딪쳤다. 결국 집회 장소를 경희대로 변경하고 대학의 반대에도 아랑곳없이 학교시설을 점령한 채 행사를 강행한 것이다.

이에 앞서 그저께 밤 서울 시내에서 민족대축전 전야행사를 마친 한총련 학생과 노동자들은 연세대로 들어가 잠을 잤다. 충돌을 피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조치로, 허가한 것은 아니었다는 학교 관계자의 설명으로 미뤄 당시 상황이 얼마나 위압적이었는지 짐작이 간다. 한총련 등이 주최한 행사가 대학들로부터 배척되는 것은 당연하다. 대학은 교육과 연구를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과거 권위주의적 정권 시절과는 달리 지금은 집회.시위가 법적으로 보장된다. 대학이 정치성 짙은 집회 장소로 이용될 이유가 없다.

한총련 등이 개최한 집회는 미군 철수를 외치는 반미행사였다. 한총련 소속 국가보안법 사범 200여 명이 사면을 받은 게 불과 며칠 전이다. 그런데 한총련은 다시 불법행동을 한 것이다. 정부가 왜 이런 단체에 관용을 베풀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 민족대축전 참가 단체의 탈법을 방관하는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는 옳지 않다. 대학들의 시설보호 요청을 받은 경찰이 당사자들끼리 결정할 문제라며 외면하는 것은 직무유기다. 집안 무단침입자와 잘 알아서 해결하라니 이 무슨 해괴한 논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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