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미덕 회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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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게르만민족이라면 생각나는 것이 있다. 근면과 업적. 한 시대「메이드 인 저머니」는 세계를 압도하는 신뢰의 상징이기도 했다.
19세기만 해도 이 원산지 표시는 조악품의 대명사였다. 그 시절 세계 최강의 공업 선진국이던 영국은 자기 나라의 뛰어난 제품과는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타국 상품엔 원산지 표시를 하도록 강요했다.·
독일인은 이런 모욕을 견elf 수 없었다. 게르만민족 특유의 미덕은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바로 그 근면과 끈기의 정신이 담긴 상품을 만들어내기로 했다. 이것이「메이드 인 저머니」의 명성과 신뢰를 갖게 했다.
독일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 욕이 있다. 파울 (faul)이라는 말이다. 『게으르다』는 뜻. 그러나 파울은 쓸모 없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게으름이 얼마나 구박덩이인가를 알 수 있다.
1962년만 해도 독일 (서독)국민 1백명 가운데 58명은 일하는 보람과 기쁨을 둘도 없는 미덕으로 여겼다. 지난 1974년까지도 서독인의 54%는 무엇인가 성취하는 것이 삶의 목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독일사람들의 마음에 이른바 선진국병이 들기 시작한 것은 70년대 중반부터다.
사회민주당 정권의 탄생과 함께 사회 복지는 최대 당면과제가 되었다.
우선 연중 공휴일이 21일에서 29일로 늘었다. 서독인들의 생활 철학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오늘의 서독인들은 놀기 좋아하는 미국 사람보다도 레저에 더 큰 관심을 갖고 있다.
가령『일을 덜 하라』고 할 경우『나쁘다』고 말하는 미국 사람들은 69%다. 그러나 서독인들은 겨우 42%만이 나쁘다고 말한다.
궂은 일을 얼마나 싫어하게 되었는지는 서독에 지금 외국인 노동자가 4백80만명이나 있다는 사실로도 알 수 있다.
최근 서독의 실업률은 7·4%. 1백80만명이 할 일 없이 빈둥거리고 있다. 그러나 요즘 서독의 觀光 수지 적자는 해마다 늘어만 가고 있다. 일자리를 찾는 일보다 놀러 다니는 일에 더 정신이 팔려 있었다. 하긴 요즘 파리 시내를 질주하는 으리으리한 관광버스들은 대부분이 서독에서 왔다. 파리엔 독일어 전용 관광버스가 등장할 정도로 독일 관광용이 많다.
이런 무드는 당장 생산성에 영향을 주고 있다. 79∼81년, 3년 동안 서독의 노동생산성은 73∼75년 수준의 절반으로 떨어졌다.
기민당 당수이며 새 수상이 된「헬무트·콜」은 기어이 소리 높여 외치기 시작했다.『게르만민족의 미덕인 근면과 끈기가 경제적 부를 함유하면서 시들기 시작했다. 독일을 위대하게 만들었던 이 미덕들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의외로 여기에 박수를 보내는 독일인들은 적지 않다. 비록 놀기는 하지만 미덕을 잊어버릴 정도로 곤드레는 되지 않은 모양이다.
「비스마르크」가 오늘 되살아난다면 그의 명언을 다시 반복하리라.『일 하라, 일 하라, 일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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