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고와 「진정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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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조선 초기에 생긴 신문고라는 제도는 북을 매달아놓고 억울한 사람이이 북을 두들기도록 하는 일종의 진정 제도였다. 이것은 분명히 힘없는 백성들을 위한 제도였지만 억울한 일도 없는 사람이 마구 이 북을 두들겼다면 어찌되었을까.
지난달 29일 검찰에 적발된 상습 무고사범들의 범행내용은 바로 오늘날의 불신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 입맛이 씁쓸하다.
「무」는 거짓 또는 간사하다는 의미. 그러므로 무고는 쉽게 말해 거짓내용을 알리는 것이다.
형법상 무고죄는「타인을 형사 또는 징계처분을 받게 할 목적으로 관청 또는 공무원에 대한 허위의 사실을 신고할 때」성립한다.
그러나 검사들은 진정·고소사건의 수사결과 사실과 다르다고 무혐의로 처리하면서도 거의 진정 인이나 고소인의 무고죄성립은 따지려들지 않는다.
무고죄는 진정이나 고소내용을 완전히 뒤엎어 거짓이라고 밝혀야하는 번거로움이 있고 입증이 어려워 공소유지가 힘들기 때문이다.
또 사건을 뒤집으면「편파적 수사」란 오해를 받기 쉽고 무고사범은 대부분 법률지식이 풍부해 자칫 검사자신이 진정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검찰은 그 동안 으름장만 놓았을 뿐 한번도 무고사범에 대해 칼을 뺀 적이 없었다. 이번 사건 수사 중에도 벌써 몇몇 수사검사가 진정의 대상이 됐고 다른 검사들은 명패를 치워놓고 신분을 감춘 상태에서 수사를 할 정도였다.
말하자면 무고사범은 수사기관이나 법원에서 가장 싫어하는 찰거머리나 독버섯 같은 존재라 할 수 있다.
검찰이나 법원이 무고사범을 신중히 다루는 또 다른 이유는 자칫하면 이들에게 속아 진짜 억울한 사람을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형법상 무고죄와 위증죄에는 다른 죄와 달리 허위사실로 인한 재판이나 징계처분이 확정되기 전에 스스로 허위라고 자백하거나 자수하면 무고·위증죄의 형을 경감 또는 면제한다는 조항이 붙어있다.
그리스의 철인(?인)「소크라테스」는 악법이라며 법이라며 스스로 ????를 받아, ??.법의 판단에 승복하는 대표적인 예다.
국가사법기?? 법과 사회양심에 따라 판단한 사안이 자신에게 불리하게 내려졌다고 이를 헐뜯는 것은 판정에 불복한 운동선수들이 심판을 구타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비유된다.
생업은 뒷전이고 진정서 보따리를 끼고 관청이나 언론기관의 문이 닳도록 드나드는 고소·진정꾼들을 언젠가 그들로부터 또 시달린 수도 있는 무고를 각오하고 척결에 나선 검찰에 국민들은 박수를 보내고있다.
그러나「진정·고소 인플레이션」이란 말도 사회일각에선 들린다. 진정 인은 경찰보다는 검찰을, 또 검찰보다는 더 높은 사정기관에 진정이나 고소를 해야「먹혀 들어간다」는 사고방식이다.
사회병폐의 추방과 함께 모든 수사기관은 접수된 진정은「귀찮은 일거리」란 생각에 앞서 진정인의 입장이 되어 진지하게 다루어 주어야한다는 자세를 겸허하게 되새겨보는 기회가 된다면 금상첨화(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권 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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