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독-EC 맥주전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l516년 바바리아대공 「빌헬름」4세가 내렸던 맥주의 순도에 관한 칙령이 오늘날에와서 서독과 구주공동시장(EC)간에 자칫「맥주전쟁」을 일으킬 위협이 되고있다. 양측의 적절한 타협이 이루어지지 않는한 이다툼은 어쩌면 EC재판소로까지 비화될지도 모른다.
서독에서 판매되는 맥주는 불순물이 전혀 섞이지 않아야하며 단지 4가지 성분, 즉 맥아(맥아)와 이스트, 호프(향)와 물만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서독시장을 노리는 외국맥주회사들이 제조하는 맥주가운데는 맥아대신 옥수수나 쌀등 다른 곡식이 사용되며 거품 효소·소금·초석, 그밖에 방부제의 일종으로 유황제가 들어가기도 한다.
이때문에 수출길이 막힌 외국주조회사들은 서독의 맥주제조원칙이 자국시장을 보호하기 위한 한 방패에 불과하며 EC의 자유무역규정에도 위배되는 것이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이같은 맥주싸움의 발단은 당초 서독이 아닌 이탈리아와 그리스사이에 비롯됐다.
1백여년전 바바리아의 황태자 「오토·폰히텔스바하」란 사람은 그리스왕위를 계승하면서 맥주의 순수성원칙을 포고했었다.
그러나 2년전 그리스가 EC의 10번째 가입국이 되자 이탈리아주조업자들은 l세기를 지켜온 이같은 원척이 대그리스맥주수출에 큰장벽이 되고있다고 불평하고 나섰고, 이어 프랑스가 서독에 대해 똑같은 비난을 가하기에 이르렀다.
EC측은 이같은 불만이『이유있다』고 판단, 지난2월 본과 아테네당국에 원칙고수이유를 제시함으로써 드디어 유럽에 「맥주전쟁」을 일으키게 된 것이다.
이같은 EC의 개입은 서독당국의 즉각적인 반발을 불러일으켜 연간 l인당 1백50ℓ의 맥주를 마시는 세계 최대의 맥주소비국민들의 감정을 크게 자극했다.
서독신문들은 이를 『맥주의 순도 문제에 대한 중대한 도전』으로 표현하고 정부가 이를 받아들인다면 가까운 장래에 맥주대신 화학약품을 마시는 꼴이 되고 말것이라고 경고했다.
서독정부 또한 EC의 간섭에 대해 『맥주순도 원칙은 소비자들의 건강을 위한 것이며 결코 국내시장보호책은 아니다』고 반박했다.
문제는 EC협약 제30조가 수입물량의 제한을 금지해 놓고도 『건강보호상 필요한 경우에는 30도 규정을 예외로 한다』고 못박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EC본부가 있는 브뤼셀의 한 당국자는 다른나라에서 만드는 맥주첨가물이 건강에 해롭다는 확신은 밝혀진 바 없다면서 서독정부의 변명은 이유가 되지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한발짝 더 나아가 양측의 관계전문가들이 맥주첨가물의 위해성 여부를 가리기 위해 이미 상당기간 전문적인 연구에 들어가 있는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벨기에 맥주수출관계자들이 『만약 서독밖에서 제조되는 맥주가 유해한 것이라면 우리는 벌써 모두 병에 걸렸을 것』이라고 비꼴 정도로 유해판정 가능성은 현실성이 희박하다.
한편 서독의 맥주광들은『서독산은 1갤런을 마tu도 다음날 끄떡없는데 다른 나라 맥주를 마시면 아침에 정신을 차리지 못할정도』라고 유해론을 강조한다.
여하간 중립적인 입장의 한 EC관리는 『서독사람들이 그처럼 애국론을 펴는데는 그 나라에 있는 l천8백개 맥주공장의 사활이 달려있기 때문』 이라는 분석이다.
이 맥주공장들은 대부분 중소기업이어서 프랑스나 벨기에·네덜란드등지의 다국적기업이나 대기업 맥주회사들이 서독시장에 진출하는 경우 판매전략과 가격경쟁면에서 상대가 될수없다는 이야기다.
「맥주전쟁」은 장기화할 전망이며 서독일각에서는 벌써부터 『외국맥주를 마시지말자』 는 캠페인까지 벌어지고 있다.
【본=김동수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