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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소금 땅서 태어난 관우 모셔야 돈 번다” … 재물신으로 추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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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세계에서 가장 오랜 독점’이 중국 정부의 소금 전매다. 공산당은 최근 이를 폐지했다. 큰 땅, 많은 인구의 중국이 역사 속에서 소금을 두고 빚은 풍경은 아주 여럿이다. 풍부한 중국 소금 역사 속 몇 장면을 소개한다.

 중국에선 이승에 살던 남성이 죽은 뒤 신(神)으로 변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 등장하는 관우(關羽·?~220)가 대표적이다. 도원결의(桃園結義)를 맺어 형으로 모셨던 유비(劉備)에 비해서도 관우가 세상을 뜬 뒤 누렸던 영예는 훨씬 높다.

 후대 통일왕조에 의해 그는 무성(武聖)으로 떠받들어졌다. ‘무인(武)으로서의 성인(聖)’이라는 뜻이다. 공자(孔子)가 역대 왕조에 의해 문성(文聖)으로 받들어졌던 일과 같은 수준이다. 문제는 관우의 아우라(aura)를 이루고 있는 요소 중 ‘소금기’가 아주 높다는 점이다.

 그의 고향은 산시(山西)성 윈청(運城). 소금이 풍부하게 나오는 염지(鹽池)라는 큰 호수가 있다. 그가 세상을 뜬 뒤 900여 년이 지난 북송(北宋·960~1127) 때다. 왕조 재정의 6분의 1을 차지했던 이 염지의 소금 생산량이 줄었다. 그러자 황제인 휘종(徽宗)의 고민이 깊어졌다. 꿈에 관우가 나타났다고 한다. “고향에 생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섰던 모양이다. 내용은 복잡하다. 아무튼 꿈속에 등장한 관우의 호언장담대로 문제는 곧 풀렸다. 장난을 벌였던 염지 주변의 요괴들을 관우가 물리쳤다는 전설이 남았다.

 이로 인해 관우는 처음 중국 통일왕조인 북송에 의해 왕(王)으로 불린다. 뒤이어 등장한 원(元)·명(明)·청(淸)에 의해 더욱 신분이 높아져 마침내 공자와 맞먹는 ‘성인’의 반열에까지 오른다. 사정이 그러하니, 지금까지 그가 누리는 영예의 속내에는 소금기가 잔뜩 묻어 있다고 할 수 있는 셈이다.

 그의 고향 후배들은 명대와 청대에 이르러 중국 최고의 부자그룹으로 컸다. 주원장(朱元璋)이 건국한 명나라에는 강력한 주적(主敵)이 있었다. 바로 몽골이었다. 그래서 만리장성(萬里長城)을 새로 쌓아야 했다. 북방에 늘어놓은 병력만 90만 명. 이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부담이 컸다.

 식량과 군수물자를 변방으로 날라야 하는 일이었다. 이를 해결한 사람이 산시의 상인, 즉 진상(晋商)이었다. 산시 지역은 춘추시대의 판도 개념으로 보통은 ‘진(晋)’으로 불리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마침 명나라는 그런 군수물자 운반을 위해 ‘개중제(開中制)’를 실시했다. 군수물자를 운반해 주는 상인에게 소금을 살 수 있는 증서를 주는 내용이다. 그 증서를 염인(鹽引)이라 했고, 나중에는 직접 염표(鹽票)로 불렀다.

 이들은 그런 기회를 살려 중국 최고 부자 상인으로 성장했다. 이들이 이동할 때 모셨던 ‘신’이 관우였다. 생전에 가장 출중한 무공(武功)으로 삼국시대 시공을 누볐던 ‘고향 선배’의 신력(神力)을 얻어 보겠다는 심산이었을 테다. 그런 산시 상인들의 행동거지를 유심히 지켜보던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는 관우가 정말 비범하게 비쳤을지 모른다.

 관우라는 인물이 통일왕조의 ‘무성’이라는 반열을 넘어 민간 모두가 떠받드는 ‘재물신(財物神)’으로서의 타이틀을 거머쥐는 계기다. 다른 지역 사람들이 볼 때는 ‘관우를 모셔야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중국 산시에서 벌어진 소금의 역사적 풍경이다. 그러나 이뿐이 아니다. 산시 상인과 함께 지난 500년 동안 중국 최고 부자그룹을 형성했던 상인들이 또 있다. 안후이(安徽) 남부를 근거지로 삼았던 휘상(徽商)이다. 지역 특산품인 찻잎·벼루·먹·종이 등을 팔아 돈을 벌었던 휘상은 명대에 들어 개중제가 실시되자 그에 곧 편승한다. 소금 구매권인 염인을 얻을 수 있는 사람 명단에 휘상은 늘 압도적인 수를 차지했다고 한다.

 휘상의 근거지 안후이성 남부 지역은 원래는 궁벽한 땅이었다. 그러나 척박한 환경을 딛고 일어서 관가로 진출하는 사람이 많았다. 휘상들은 중앙의 관가로 진출한 동향의 사람들과 정교한 네트워크를 구성해 소금 판매업에 뛰어들어 돈을 많이 벌어들였다.

 소금으로 번 돈을 굴리기 위해 전당업(典當業)의 영역에 새로 눈을 떴고, 마침내 이런 지역 전통을 바탕으로 청나라 말엽 중국 최고 부자로 부상했던 호설암(胡雪巖)을 키워 냈다. 상업적인 분위기가 극성일 때는 이곳 성인 남성 중 70% 이상이 비즈니스에 종사했을 정도라고 한다.

 중국의 소금 역사에 얽힌 스토리는 아주 풍부하다. 소금을 정부의 전매품으로 처음 삼았던 사람은 춘추시대 강력한 패권자였던 제(齊)나라의 재상 관중(管仲·BC 716~BC 645)이다. 발해를 끼고 있는 제나라는 풍부한 소금 생산지였다. 게다가 간수(苦鹽 혹은 ?水라고도 한다)를 사용한 제조법으로 질 좋은 소금을 생산해 다른 지역을 압도했다. 민간에서 소금을 만들고, 정부가 이를 독점적으로 사들여 판매하는 방식을 동원해 생산량과 품질을 모두 잘 관리했다고 한다. 춘추시대 판도에서 볼 때 동북 지역의 조그만 지역에 불과했던 제나라가 다른 지역의 국가들을 누르고 패자(覇者)의 위상을 확보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런 소금의 생산과 교역 때문이라는 풀이가 뒤따른다.

 한(漢)대에 들어서는 무제(武帝·BC 156~BC 87) 사후에 유명한 ‘염철(鹽鐵)에 관한 논쟁’이 벌어졌다. 국가 전매가 옳은지를 따지는 자리였다. 그럼에도 수(隋)·당(唐) 연간에 잠시 국가 전매가 사라진 점을 제외하곤 이 전통은 줄곧 이어졌다. “국가 세수(稅收)의 절반을 차지한다(天下之賦, 鹽利居半)”는 말이 있을 정도로 왕조의 재정에서 소금 전매는 빼놓을 수 없는 항목이었기 때문이다. 강력했던 당나라의 멸망을 재촉했던 농민반란의 주동자 황소(黃巢)가 유명한 소금 판매업자였고, 월(越)나라 구천(勾踐)을 도와 오(吳)나라를 무너뜨렸던 범여(范?)도 월나라를 떠나 도주공(陶朱公)이라는 가명으로 소금 판매에 종사해 막대한 부를 쌓았다고 알려져 있다.

 역대 왕조의 성인(聖人)에 이어 민간이 가장 떠받드는 재물신으로 올라선 관우, 지난 500년 동안 중국의 최고 비즈니스 그룹으로 활동했던 진상과 휘상, 과거 왕조의 집요한 전매권 유지에는 이렇듯 다 소금의 기운이 짙게 배어 있다.

 현대적 기술로 양산이 가능해진 까닭에 소금이 지금 중국의 국가 재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주 보잘것없다. 그럼에도 공산당은 1949년 건국 뒤 줄곧 소금 전매권을 놓지 않았다. 질 나쁜 소금 유통을 통제하기 위한 당의 고육책이었다. 그런 중국 공산당이 이제야 유장한 역사의 소금 전매권을 민간에 풀었다. ‘전통의 중국’이 보여 주는 가장 뚜렷한 특징인 왕조 중심, 권력 중심의 관본위(官本位)의 사고가 중국 공산당에 의해 또 한 차례 흔들리는 장면이었다.

[S BOX] 타림 분지의 소금 호수, 12억 인구가 4000년 쓸 분량

중국의 소금은 바다에서 나는 해염(海鹽), 굴착을 통해 파내는 정염(井鹽), 내륙의 호수에서 얻어지는 호염(湖鹽)의 세 종류로 크게 나뉜다. 바다 소금으로는 동남부 연안인 장쑤(江蘇)의 옌청(鹽城)이 가장 유명하다. 한국의 기아자동차가 진출해 한국인의 발길이 자주 닿는 곳이다.

 인근의 유명 역사적 도시이자 신라 최치원(崔致遠)이 벼슬살이를 했던 양저우(揚州)는 바다 소금의 거래와 유통으로 성장한 대도시다. 중국 서남부의 중심을 형성하고 있는 쓰촨(四川)은 정염으로 유명하다. 이곳의 쯔궁(自貢)이라는 도시의 성장 역사는 역시 이 정염과 맥락을 함께하고 있다. 상고시대 이곳이 유럽의 사해(死海)와 같은 내륙 속 바다였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지층 밑에 방대한 양의 간수층이 발달해 있어 이를 길어내 소금으로 제련할 수가 있다. 한(漢)대에 이미 굴정(掘井) 기록이 보인다.

 호수 소금, 즉 호염으로 유명한 곳이 바로 관우의 고향인 산시다. 중국 초기의 황하(黃河) 문명이 이곳에서 움텄으리라 보는 사람도 적지 않다. 황하 문명의 복판인 중원에 해당하면서 유일하게 소금을 얻을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바다가 발달한 동부는 해염, 중부는 정염, 서부는 호염이 많이 나온다. 땅이 넓은 만큼 내륙의 소금 산지도 꽤 많은 편이다. 티베트, 신장위구르 지역, 서남부의 쓰촨 등에서도 대량의 소금이 나온다. 서북부의 타림 분지에 있는 소금 호수의 잠재적인 소금 생산량은 12억 인구가 4000년을 쓸 수 있는 양에 이를 정도라고 한다.

유광종 도서출판 책밭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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