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꿈나무] 탁 털어놔 봐 더 친해질 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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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스타와 핸드폰 귀신들
캐시 홉킨스 지음, 박슬라 옮김, 오즈북스, 232쪽, 8500원

성장소설의 매력은 '공감'이다. 주인공이 풀어놓는 불안.방황.열등감.모험.사랑 등이란 게 누구나 예외없이 아이에서 어른으로 커가는 과정에서 겪는 통과의례이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독자는 주인공의 처지 속으로 감정이입이 될테고 실제 자신의 삶을 객관화시켜 바라볼 안목을 얻게 된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성장소설만큼 꼭 필요한 장르도 없으리라. 비록 논술이나 수능에 직접 도움이 안 되더라도 말이다. 영국 작가 캐시 홉킨스의 '나를 나로 만드는 것'시리즈(전 10권)는 사춘기 소녀들의 고민을 섬세하게 그려낸 성장소설이다. 2001년 첫 출간된 뒤 영국에서만 100만권 넘게 팔렸다. 국내에선 1~4권이 번역돼 나왔다. 그 중 세번째 책인 '네스타와 핸드폰 귀신들'은 런던에 사는 열네살 소녀 네스타의 콤플렉스 극복기다.

네스타는 '섹시 퀸카'라고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지만, 흑인이라는 사실이 남모르는 콤플렉스가 됐다. 인종차별에 맞서기 위해 더 당당하게 행동하는 네스타. 남자친구 사이먼도 항상 자신감 넘친 태도 때문에 네스타가 좋다는데. 네스타는 맘 속으로 외친다. '그건 다 연기야.'

네스타의 콤플렉스는 사이먼과 그의 친구 크레시다 때문에 점점 깊어진다. 사이먼은 엄청난 부잣집에 상류계급 출신. 승마와 스키를 즐기는 그의 수준을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다. 또 명품 옷만 입는 부잣집 딸 크레시다는 노골적으로 네스타를 무시한다. 크레시다에게 기가 죽지 않기 위해 새옷을 사고 싶다. 전재산 30파운드를 털어 즉석복권을 샀지만 다 '꽝'만 나왔다.

이렇게 현실적인 고민을 다루고 있지만 결론은 현실보다 훨씬 장미빛이다. 늘 즐거운 척 하는 데 지친 네스타가 용기를 내 사이먼에게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말한다. 그 과정에서 네스타는 친구들과도, 가족들과도 더 가까와진다. 사이먼과는 말할 것도 없고. 어두운 구석이라곤 없는 엔딩이다. 그렇다고 '뭐야, 이거. 만화 같잖아'라며 폄하하지는 말 것. 그런 판타지적인 요소들이 읽는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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