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후계」일단은 인정받은 듯|김일성의 북경방문결과를 보는 시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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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해설>지난16일부터 10일간에 걸친 김일성의 중공방문은 한마디로 북괴-중공간의 관계강화를 겉으로 과시하는 극적 효과를 노린 것이었다.
정무원(내각)인민무력부장 오진우와 당국제사업부장 김영남 등 국방 및 외교관리 9명으로 구성된 김일성 일행은 북경역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파격적 환영과 환대를 받았다.
중공측의 파격적인 김일성 지지의 표명을 보고 현지의 외교관측통들은 북괴-중공간의 현실적 관계회복이상의 것을 노린 것으로 풀이한다. 즉 북괴의 세습체제에 대한 지지는 이로 인해서 한때 소원해졌던 관계회복을 넘어서 김일성 사후체제가 소련으로 기울 것을 막자는데 목적이 있다는 풀이다.
이런 풀이는 「북괴지도부가 신진대사됨에 따라 부상하게될 중간간부들이 주로 소련에서 훈련받은 자로서 구성된 사실과 관련하여 김일성 사후북괴가 친소화하는데 대한 중공측의 우려를 반영한 것이라 하겠다.
특히 중공당이 김일성을 맞아 계속적 지지를 표명한 것은 시기적으로 큰 뜻이 있다.
지난 4월 김일성 생일에 북괴측은 소련을 비롯한 동구 여러나라에도 대표단 파견을 요청했으나 이에 불응하고 현지 대사를 행사에 참여시키는데 공동보조를 취한바 있다. 이는 분명히 김일성 개인숭배에 대한 냉담 또는 비판적-태도의 노골적인 표현이다.
이런 처지에서 김일성 체제가 중공고위지도자의 비밀방문이나 공식지지를 받는다는 것은 단순히 양당관개의 개선에 도용이 되는데 그치는 것만도 아니다.
김일성의 이번 방문은 북괴-중공관계의 긴밀화를 과시함으로써 북괴의대중공 접근을 견제하려는 소련에 일침을 가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사실 소련으로서도 김일성 세습문제로 이념적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북괴-중공관계의 긴밀화를 속수무책으로 방관하게되면 극동지역에 있어서 중·소 균형이 깨지는 것을 감수해야만 하는 어려움이 있다.
중-소 대립이 시작된 60년대 후반부터 중-소 등거리외교에서 경쟁적 지지와 지원을 받아내는데 이골이 난 김일성은 이번에도 바로 그런 수법으로 세습체제에 대한 공산권의 지지를 확대할 속셈을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과연 중공의 김일성 체제 지지가 김일성의 계산대로 소련에 대해서 세습체제 승인의 압력이 될지는 미지수다.
북괴대표단의 구성으로 보아 북괴의 주요관심사는 군사·외교문제에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평양측이 중공에 대해서 경제·군사면에서의 지원을 요청해도 중공 자체능력의 한계로 큰 지원은 어려울 것으로 평가된다.
외교적으로는 평양측의 최대관심사가 최근 활발해진 중-소 관계회복의 움직임과 관련하여 그 진의를 중공측에 타진하는데 있을 것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중공이 저처럼 북괴를 두둔하는 것을 보면 중공측에는 관계회복의 뜻이 없는 것 같다.
그밖에 외교적으로 최근 한국의 눈부신 제3세계에 대한 외교진출과 88년 올림픽개최에 대한 공동대책, 제3국을 통하여 실시해온 중공의 대한무역의 규제 등 한국의 고립화와 양측간의 긴밀한 유대강화에 관련된 의견교환이 있었을 것은 추측하기 어렵지 않다.
그러나 주한 미군의 철수문제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의견을 같이하면서도 미묘한 견해차를 보였다.
구체적으로 지적하면 호요방은 한 연설에서 주한미군철수를 『어떤 힘으로도 막지 못할 역사의 추세』라 하여 서두를 것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김일성은 이에 답하여 주한미군철수는 『제국주의와 싸우는 광범한 연합전선』을 요한다하며 대미관계를 가지고 있는 중공에 불신감을 터뜨린 꼴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공의 대북괴군사지원이 이번 방문의 실질적 성과가 될 것 같다.
올해 상반기에 이미 중공제 최정예전투기 A-5기 20기가 도입되었다는 보도이고 보면 이는 소련이 최정예기의 대북괴제공을 자숙하는 것과 대조를 이룬다. 중공이 김일성 중공방문을 계기로 소련과 대북괴 무기원조경쟁을 벌인다면 이는 한반도의 균형적 안정을 깨는 중대한 결과가 될 것이다.
어떻든 중공과 북괴관계의 상황변화가 예상되므로 김일성 중공방문이후의 사태진전을 예의 주시하여 대응책을 마련해야할 것이다.
강재윤 <본사 동서간제연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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