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치료 캠프 '가평 쉼터' 르포] 인터넷 중독 청소년 208만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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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쉼터 학교에 참가한 청소년들이 다도를 배우고 있다. 빙 둘러앉아 전통예절을 익히며 친구 사귀는 법도 배우는 프로그램이다.가평=김태성 기자

우리나라는 세계가 인정하는 정보통신(IT) 강국이다. 전 국민의 71.9%가 인터넷을 이용하고, 초고속인터넷망 보급률은 78%에 이른다. 인터넷은 이제 사교육비 절감을 위한 수능방송(EBS)에까지 이용될 정도로 필수적인 생활도구가 됐다. 하지만 그 이면엔 온라인 게임이나 채팅.메신저 등에 빠져 사람을 만나는 것조차 꺼릴 정도로 일상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인터넷 중독자들이 있다. 한국정보문화진흥원은 410만여 명이 인터넷 중독에 시달리고 있으며, 그중 절반 이상인 208만명이 초.중.고교생인 것으로 추정한다.

10일 경기도 가평의 청심청소년 수련원. 서울에서 자동차로 두 시간을 달려 닿았다. 청평호가 내려다보여 가슴속까지 시원해지는 곳이다. 이곳에선 인터넷 중독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고생을 위한 '인터넷 쉼터 학교'가 열리고 있다.

정보통신부 산하 정보문화진흥원이 국내 최초로 개설한 무료 교육과정으로,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의 학생 37명이 참가했다. 부모의 권유나 스스로의 결정으로 이곳을 찾은 학생들은 9~12일 나흘간 숙식을 함께하며 PC 없이 생활할 수 있는 법을 배운다.

진흥원의 오원이 인터넷 역기능방지 센터장은 "인터넷 과다 사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생들이 자연 속에서 뛰놀고 친구도 사귀면서 자연스레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이번에 참가한 청소년들은 중독에서 스스로 벗어나려고 하는 의지가 있고, 비교적 부모의 말도 잘 듣는 학생들이다. 진짜로 심각한 인터넷 중독자들은 방 안에서 나오려 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쉼터 학교에 참가한 학생들은 'PC 없는 생활'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어젠 너무 힘들었어요. 그동안 게임을 안 한 날이 하루도 없었거든요." 10일 쉼터에서 만난 이모(중3)군의 말이다. 몇몇은 식사시간에 따로 앉아 식사를 했고, 한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하면서도 대화를 거의 나누지 않는 청소년들도 있었다.

"첫날엔 유일하게 PC가 있는 수련원 사무실 주변을 서성거리는 학생들이 꽤 있었어요. 둘째 날 오후가 되니 친구들과 점차 말을 나누고 놀이도 같이 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이은아 연구원은 "인터넷에 빠진 학생들은 대체로 다른 사람과 어울리기를 꺼리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사귀는 습관을 들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이 때문에 처음엔 걱정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쉼터학교의 프로그램은 집단상담과 단체활동 등 크게 두 가지로 짜여 있다. 집단상담은 8, 9명씩 조를 짜서 인터넷 중독에 대한 서로의 경험과 생각을 토론하면서 문제점을 스스로 찾아내도록 하는 과정이다.

주석진 상담교사는 "학생들에게 찰흙으로 미래의 꿈을 표현해보라고 했더니 장래에 게이머나 프로그래머가 되겠다면서 컴퓨터를 만든 학생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데 학생들에게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을 말해보라면 그저 컴퓨터를 많이 하면 되는 줄로만 알고 있어 놀랐다"고 했다. 주 교사는 "하지만 오랜 시간 토론을 벌인 끝에 프로그램이나 PC기술에 대해 공부를 해야 그런 직업을 가질 수 있고 그러기 위해선 PC 사용 시간을 줄여야 한다는 결론을 도출해 낼 수 있었다"고 전했다. 단체활동은 물놀이나 스포츠를 즐기는 시간이다. 학생들이 코믹 댄스나 패션쇼 등을 직접 기획하고 출연하는 과정도 있다.

김경민(가명.중1)군은 "전엔 쉬지 않고 여덟 시간 동안 온라인 게임을 한 적도 있었다"며 "이곳에 와 무척 불안했는데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과 어울리다 보니 이젠 PC 없이 살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조금씩 든다"고 말했다. 박하늘(가명.중1)군은 "학원을 빼먹고 PC방에 간 적도 많았다"며 "다른 친구들도 이런 쉼터에 많이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진흥원은 하루 네 시간 이상 업무 목적 외의 게임이나 채팅 등을 위해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고위험 인터넷 중독자로 분류한다. 또 하루 두 시간 이상 게임 등에 몰두하면 잠재적인 중독 위험자로 본다. 이들은 밤새워 게임을 하고 낮에는 졸거나, 업무에 집중하지 못한다. 특히 게임중독증을 보이는 청소년은 대인기피증.강박감.폭력성.편집증.체력저하 등의 현상을 보인다는 것이다.

한국전산원 권헌영 연구원은 "청소년들은 스스로를 통제하기가 어려워 인터넷 중독에 빠질 위험이 성인보다 높다"며 "인터넷 중독에 빠진 청소년들을 치유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와 부모의 관심"이라고 강조했다. 진흥원 김혜수 인터넷 중독 예방팀장은 "PC를 청소년들의 방에서 거실로 옮기기만 해도 치유를 위한 첫발을 내디딘 셈"이라고 말했다. 자신을 통제하기 어려운 청소년들은 방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을수록 게임이나 채팅을 하고 싶은 유혹에 빠질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문제는 인터넷 중독을 예방하거나 치료하는 체계적인 시설이나 프로그램을 국내에선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진흥원은 앞으로 여름방학 때마다 인터넷 쉼터학교를 열 계획이다. 하지만 수용 인원이 수십 명 정도여서 이 프로그램만으로 수백만 명에 달하는 인터넷 중독 청소년들을 치료하기란 불가능하다. 진흥원 관계자는 "정부는 물론 기업.학교.가정 등에서도 인터넷 중독 문제에 진지한 관심을 갖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가평=장정훈 기자, 이수진 인턴기자<cchoon@joongang.co.kr>
사진=김태성 기자 <t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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