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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 시평

진화하면 안 되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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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올릴 말씀은 하해(강과 바다)같이 많으나 이만 필(붓)을 놓겠습니다."

▶ 이윤기 소설가.번역가

우리 어릴 때 자주 쓰던 편지 맺음말이다. 필기도구가 붓에서 연필로, 연필에서 펜으로, 펜에서 만년필로 바뀌었지만 이 맺음말은 최근까지도 줄기차게 쓰였다. 1991년 봄, 지금은 우리나라에서도 굉장히 유명해진 종교학자 오강남 박사(캐나다 리자이나 대학)로부터 한 장의 편지를 받았다. 편지의 맺음말은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전령사의 나팔소리 같았다.

"…할 말은 많으나 이제 그만 컴퓨터를 끄겠습니다."

업무와 관련해 내가 만나는 기자나 출판 관계자는 거의 30대다. 나는 매일 수많은 전자우편을 받지만 맺음말을 "이만 붓을 놓겠습니다"라고 쓰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다. 하기야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니 놓고 자시고 할 것이 없다. 가장 눈에 띄는 맺음말은 이렇다. "그럼, 꾸벅."

'꾸벅'을 처음 읽었을 때의 느낌은 '야, 이렇게 진화하는구나'였다. 소리시늉말(擬聲語)이나 짓시늉말(擬態語)이 가치중립적으로 쓰인 것이 아니어서 퍽 참신했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30대 중반 사람들은 근엄한 글말 대신 경쾌한 입말을 선호하는 것 같다. 경쾌한 입말에 소리시늉말이나 짓시늉말이 얹히면서 글의 표정이 매우 풍부해지는 것 같다. '파이팅!' 대신에 등장한 '아자!'는 표정도 풍부하고 속도감도 있는 것 같다.

"그럼 오늘의 주인공을 이 자리에 모시겠습니다, 두구두구두구두구…."

'두구두구'는 표준 소리시늉말의 '둥둥'에 해당한다. 옛날 같으면 '둥둥'으로 무난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 이 경우에 두드리는 북은 스네어(snare), 즉 향현(響絃)이 붙어 있는 스네어 드럼이다. 짧은 북채 두 개로써 바튼 박자로 치는 소리시늉말로 '둥둥'은 얼마나 부적절한가? 한 젊은 소설가의 소설을 읽고는 하도 좋아서 그에게 전자우편을 보냈다. 글이 참 좋더라는 나의 편지에 그가 전자우편으로 답장을 보내왔다. 달랑 두 자. '뿌듯!'

"실질을 '실찔', 효과를 '효꽈', 성과를 '성꽈'로 발음하지 말 것."

방송국 게시판에 붙은 쪽지 내용이다. 가만히 발음해보았다. 분명히 '실찔, 효꽈, 성꽈'여서 나에게 주는 주의 같았다. 된소리화(硬音化)를 염두에 두고 직원들에게 주의를 주고 있었으리라. 버스, 소주, 자장면을 '뻐스' '쏘주' '짜장면'이라고 해도 주의를 받는단다. 컴퓨터 글말에서는 어떨까? 된소리 'ㅃ'을 찍자면, 'ㅂ'과 '밀기(shift)'를 한꺼번에 쳐야 한다. 자판 두드리는 게 직업인 나 같은 사람도 된소리 찍을 때는 짜증이 난다. 된소리 칠 때 오타가 많이 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반대 현상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컴퓨터 글말에 관한 한 된소리화 현상은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왔다갔다'를 '왓다갓다'로 적는 누리꾼들이 늘어가고 있다.

외국에서 자란 대학생 처조카가 방학을 맞아 어머니와 함께 귀국했다. 음식점에 가서 함께 저녁을 먹는데, 그 어머니가 갑자기 아들의 발을 철썩 소리가 나게 때렸다. 왜 그러냐니까, 어른 앞에서 조신하게 책상다리하고 앉아야지 버르장머리 없이 다리를 좍 뻗어서 때렸단다. 내가 처남댁을 나무랐다. 좌식(坐食) 음식점을 고른 나의 불찰이에요. 책상다리는 의자 없던 시대의 앉음새예요. 요즘 젊은이들이 얼마나 큰가요? 얘만 해도 키 1m86cm에 몸무게가 100kg으로, 이런 체형으로 어떻게 책상다리 하고 앉을 수 있어요? 의자를 마련해 주어야지 책상다리 하지 않는다고 때리다니, 곧 책상다리 하고 앉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세상이 온다고요.

참신하다고 해서, 진화의 징후를 보인다고 해서 내가 누리꾼들의 언어 풍습을 전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의 글에서 '천자문'과 '명심보감' 좔좔 외면서 자란 나 같은 사람에게는 언감생심인, 보석 같은 낱말들이 무수히 반짝이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것을 찾아 읽는 재미, 주워서 되살려 쓰는 재미가 쏠쏠하다. 적자(適者)인 것으로 판명된다면 생존(生存)할 것이다.

이윤기 소설가.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