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일전참패가 망신의 근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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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한국여자배구는 세계여자배구선수권대회에서 일본에 패하는 치욕을 당하고 4강진출까지 농락당하는 사상 유례없는 망신살이 뻗쳤다.
일본이 한국에 조차 3-0으로 완패당한 홈팀 페루에 다만 1세트만 따낸채 주저앉아 버리리라고는 누구도 예측못했었다.
그러나 일본의 고의적인 패배보다 선수들의 실력을 향상시키지못한 배구협희의 무능과 높은 일본의존도가 더욱 분노를 일으키게 하고 있다는데에 문제점이 있다.
한마디로 한국이 일본에 15-0이란 참혹한 패배를 당하지 않았어도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다.
한국은 대일본전에서 불과 40분만에 3세트를 통해 겨우8점만을 따낸채 3-0으로 처절한 치욕을 당하고도 당연히 일본이 페루를 이겨주어 목표했던대로 4강진출은 무난하다고 자력보다 타력, 그것도 일본에 의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배구가 일본에 의존하는 것은 비단 이번에 페루를 이겨달라는 것뿐이 아니었다.
이번 선수단은 출발때부터 왜색일색이었다.
배구협회는 지난달 18일 페루선수권대회에 선수단이 출발할때 첫기착지가 로스앤젤레스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굳이 도오꾜경유 LA로 바꿔 선수단을 무려 9시간30분동안 나리따공항근처 호텔에 지체토록 한바있다. 이는 일본 스포츠상사가 우리선수단에게 선전용으로 제공하는 일제유니폼을 선수들의 몸에 맞게 가봉하는데 시간이 필요했기때문이다.
이같은 물의를 빚고 출전한 여자선수단이 마침내 일본에 뒤통수를 맞은꼴이어서 한심한 배구협회의 무능 행정을 드러내고있다.
세계대회가 개막된후 조석래협회장은 『4강진출을 축하한다』고 엉뚱한 격려전문믈 보냈고 현지에는 전혀 관계임원을 파견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배구협회는 지난 6월11일 2년만에 아랍에미르트 연방에서 귀국한 거포 강만수(28·1m95㎝)의 대표팀 복귀문제때도 한심한 일본 의존도를 보였었다.
당시 남자대표팀은 주공 강두태가 오른쪽 어깨 부상이고 이종경이 발목부상, 유중탁이 손가락부상, 그리고 문용관이 간염으로 최악의 상태여서 강만수의 귀국은 대표팀전력에 큰 활력소가 되었었다.
이 과정에서 배구협회는 이때 친선경기차 내한중인 일본배구협회 전무이며 국제배구연맹자격심사위원인 「마쓰다히라」(송간)에게 『아마자격여부』를 질의, 일축을 당하는 우를 범했다.
배구협회는 이같은 자초의 우로 국제연맹회장단에 공식문의 한번 해보지 못한채 울며겨자먹기식으로 강만수를 트레이너로 기용하는 막연한 상태에 빠져있다.
어쨌든 일본의 고의적인 패배는 한국의 실력부족등도 한심하지만 과거 한일배구 역사로 볼때도 너무나 어이없는 일이기도 하다.
박진관배구협회 이사는『도무지 상상도 못할 상식밖의 일』이라며 『과거의 은혜도 모르는 일본의 이율배반적인 처사는 규탄받아 마땅하다』고 분격해했다.
지난64년 동경올림픽때 일본은 처음으로 여자배구종목을 신설, 우승을 노렸다. 그러나 아시아지역대표로 선발됐던 북한(한국은 이때 3-0로 패했음)이 국가호침문제를 둘러싸고 대회개막을 불과 사흘앞두고 돌연 귀국해버려 대회가 참가국절대수 (당시6개국)에 1팀이 모자라 유산될 위기에 놓였었다.
당황한 일본은 부랴부랴 아시아지역 2위팀인 한국에 참가요청을 해왔으며 이에 한국은 낙향해 있는 선수를 불러모아 하루만에 오광섭씨(77년작고·당시협회부회장)를 단장으로한 선수단(임원2·선수12)을 급조, 파견함으로써 대회를 무사히 마치도록 협조했던 것. 결국 일본은 대회첫우승의 감격을 누렸으며, 한국은 최하위인 6위를 기록했었다.
이일로 해서 당시「니시까와」(서천) 일본배구협회장은 민관식당시체육회장에게 『정말 한국에 감사한다. 앞으로 추호도 이은혜를 잊지않고 동반자관계를 계속 유지해나가겠다』 고 양국간의 우호증진을 굳게 약속했었다.

<전종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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