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도엔 말달구지도

카토비체시는 바르샤바에서 남쪽으로 3백㎞ 떨어진 체코국경에 가까운 공업도시라고 안내자가 일러주었다. 바르샤바에서 4차선 도로가 뻗어있기는 했으나 고속도로는 아니다. 잘 포장된 도로이긴 했지만 시속 80㎞로 제한해 카트비체시까지 닿는데 4시간30분쯤 걸렸다. 3백㎞를 달리는 동안 산이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고 줄곧 평원만 계속됐다.
소와 양이 풀을 뜯는 것이 자주 눈에 띄었고 말에 쟁기를 메워 밭을 가는 농부들, 이따금 목판에 과일을 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할머니들이 눈에 띄었다. 말달구지도 많았는데 자동차길로 한가로이 오가는 것이 첫인상으론 퍽 목가적이다.
폴란드는 국토의 거의 전부가 평원과 낮은 구릉지대로 돼있고 남부지방에 약간의 산이 있다고 했다.
일행이 도착한 카토비체시는 1백년 넘게 독일인들이 지배하며 생활하던 탄광지대인 이른바 실레지아 지방에 있는 중요한 공업도시다. 풍부한 석탄을 중심으로한 공업이 발달해 해마다 시커먼 분진이 1평방㎞에 6백t이 날아내린다고 했다.
그래선지 인구35만명의 도시전체가 잿빛을 띠고 구시가지의 건물들은 거무스름한 색조를나타내고 있었다. 옛날에는 퍽 아름다왔을 조각과 장식을 한 오랜 건물들은 손질을 안한 탓인지 퇴색해 있다.
경기가 시작되기 3일전에 도착한 덕분으로 선수들에 대한 관리는 감독과 코치에게 일임하고 틈틈이 호텔을 중심으로 구경해 볼 짬을 가질수 있었다.
선수단이 묵은 호텔은 이 도시에서 2번째로 좋다는 별4개짜리 카토비체호텔이었다. 대회에 참가한 선수단은 모두 이 호텔에 들었다. 경기장은 걸어서 5분정도 거리에 있고 시내 중심부에 위치해 있기때문에 여러가지로 편리했다.
거리는 상오7시부터 출근하는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해서 하오7시쫌 되면 한산해지곤 했다. 그동안은 끊임없이 오가는 행인들로 북적댔다. 느릿느릿 걷는 사람은 없다. 거의 대부분의 행인들이 예외없이 묵직한 손가방이나 쇼핑백을 들고 분주히 돌아다니고 있다.
이곳저곳 상점앞에는 커다란 행렬들이 눈길을 끌었다. 신문을 비롯, 간단한 일상잡화를 파는 노점에서부터 음료수와 식사를 할수 있는 간이음식점에 이르기까지 적게는 4∼5명에서 1백명에 이르는 행렬이 있게 마련이었다.
백화점에 들어가보니 국영인탓인지 폴란드 점원들이 악착스레 물건을 팔려는것 같지 않았다.
고객이 요구하면 덤덤히 물건을 내주며 기계적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것이 눈에 띄었다.
물건을 포장하거나 쇼핑백에 넣어주는 일도 없다. 어느 상점이건 누르스름한 시멘트부대같은 종이에 싸서 내주었다. 유일하게 쇼핑백에 물건을 넣어주는 곳이 있기는 하지만 그곳은 외국화폐로만 물건을 파는 특수 상점이다.
길거리의 사람들이 너나할 것없이 가방이나 쇼핑백을 들고다니는 이유를 알수 있었다. 한국같으면 그냥 물건을 넣어주는 비닐쇼핑백을 파는 것을 본일이 있는데 한장에 1백20줄로티(1천2백원)를 받고 있다. 5백g짜리 식빵한덩이에 30줄로티(3백원), 단배한갑에 50줄로티 (5백원), 공중전화요금이 2줄로티, 코카콜라1병에 46줄로티(폴란드에서도 코카콜라가 생산되고 있다)인데 비해 비닐봉투 하나값이 그렇게 엄청난 것은 우리로서는 상상도 할수없는 일이었다.
이처럼 곳곳에서 물건이 딸리고 술·담배의 경우 배급제이기 때문에 일정한 분량외에는 구입할수 없지만 그런 제한없이 물건을 살수있는 특수상점이 시내 여러곳에 산재해 있다.
폴란드말로 피엑스(PX)로 불리는 외국물건만 전문으로 파는 상점이다. 미국달러를 비롯,서구화폐만 통용되는 상점으로 내국인이건 외국인이건 필요한 물건을 제한없이 살수 있었다. 호텔은 물론 중앙역·지하도등 시내 요소요소에서 그런 상점이 눈에 띄었다.
달러의 경우 거스름돈이 부족한 탓인지 아예 종이로 PX에서만 통용되는 20센트짜리를 은행에서 발행해 사용하고 있다.
일반상점에서 폴란드화폐를 주고는 구할수 없는 코피도 이 PX에서는 얼마든지 구입할수 있다. 출입국때에 외화관리와 통제가 철저하기는 하지만 국내에서의 외화소지는 자유롭고 이 출처를 묻지않기때문에 외화, 특히 달러화에 대한 인기는 절대적이다. 폴란드정부가 이러한 상점을 경영하는 것은 부족한 의화를 확보하기 위한 수단인 것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