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도볼겸…"들뜨는 공단추석귀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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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너도 이번에 선보니?』명절이 다가오면 공단의 여성근로자들은 서로 이런 인사를 주고 받는다.
신부감이 부족한 농촌이라 최근 한국가정문제연구소가 농촌청년과 도시처녀의 짝지어주기 운동까지 벌인바 있지만 이같은 「짝지어주기운동」은 도시의 공장에 다니는 처녀들이 고향을 찾는 명절에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것이다.
저금통을 털어 부모님께 드릴 선물을 마련하거나 고향친구들을 만나게될 기쁜마음도 있지만 공단에서 일하는 여성근로자들은 『이번 귀성길에 선을 보라』는 부모의 연락에 더욱 가슴이 설렌다.
때문에 명절귀성길은 여성근로자들에게는 선보러 가는 길이고 선을 보는 근로자들중 상당수는 아예 상경을 포기하고 고향에 남아 결혼준비에 들어간다는것.
서울구로공단의 경우 여성근로자를 고용하는 업체마다 명절이 지나면 으례 5∼10명씩의「결원」이 생긴다.
업주들은 23세이상 여성근로자중 반수이상이 명절때 선을 보는것 같다며 인륜대사 (인륜대사)라 어쩔수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공장에 정을 두게하기위해 이번 추석에도 3백여대의 버스를 전세내 근로자들의 귀성길에 편의를 마련하는등 결혼문제로 상경을 포기하는것에 은근한 제동(?)을 걸고있다.
그러나 결혼문제에 관한한 여성근로자들의 소신은 확고하다.
『좋은 혼처라면 망실이지 않겠다』는 것.
3년전에 상경, B상사 봉제공으로 일하는 정모양(23·전북군산)은 시골 부모님으로부터 『좋은 신랑감을 골라뒀으니 이번 추석때 내려와 선을보라』는 연락을 받았다며 『이번에 선보는 사람이 마음에 안들면 올라오겠다』고 했다.
W산업에서 일하는 김모양 (25·충남부여)은 『지난 구정때도 선을 보고 마음에 안들어 상경했다』며『그러나 이번 추석에는 「나이도 나이이기때문에」 웬만하면 결혼하겠다』고 말했다.
김양의 선본경력은 4번. 그러나 김양은 이번에는 그동안 결혼비용으로 모아뒀던 1백50만원을 헐어 신랑예물로 「라도」시계까지 준비했다고 했다. 김양은 자신의 결혼때문에 부모님의 궁핍한 가계를 주름지게 할수 없어서 「누가 차게될지도 모르지만」시계를 장만했다며 얼굴을 붉혔다.
공단측은 『나이든 여성근로자들이 귀성길에 선을 보는것은 자연스런 일이겠지만 특수분야의 기능공으로 키운 처녀들이 선을 보고 고향에 주저앉는 경우가 있어 말도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 앓는다』고 했다.
반면 나이 어린 여성근로자들 가운데는 귀성여비를 아끼기 위해 귀성을 포기하는 억척파도 있다.
봉제공 이모양(21·경북울진)은 『내년 구정에나 고향에 갈 계획』이라며 『고향에 가려면 적어도 5만원은 들텐데 영화관에나 가는것으로 명절기분을 내겠다』고 했다.
구로공단의 경우 귀성근로자들은 28일 하오5시 원림산업에서 33대의 전세버스로 첫귀성길에 오르는것을 필두로 28일과 29일사이에 1만3천6백여명이 공단을 빠져나갈 예정이다.

<도성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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