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쟁점없는 「예산국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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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제5공화국 출범이후 두번째로 맞는 제114회 정기국회가 20일 개회됐다.
이번 국회는 「정치의안」을 제외하곤 아직 여야간 두드러진 정치적 쟁점이 없다.
그러나 11대 국회의 전반2년을 결산한다는 점과 민정·민한·국민 등 주요정당의 전당대회를 불과 수개월 앞두고 열린다는 점에서 작년의 정기국회와는 또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민정당은 이번 국회가 지난 한해동안의 경험과 시행착오를 토대로 새 시대에 부응할 수 있는 80년대의 의정상을 「정착」시키는 국회가 돼야한다는 기본자세를 지니고 있다.
반면 민한당은 이번 국회야말로 처리를 미뤄왔던 「정치의안」들을 본격적으로 다뤄 정치회복의 계기로 삼아야한다는 입장이다. 국민당도 정치발전과 국민고통해소에 최우선을 두겠다는 방침이다.
다시 말해 민정당은 국회의 고유기능인 입법과 국가통치의 원활한 지원에 역점을 두는데 비해 야당은 국회기능중 정치적 갈등해소에 더 큰 비중을 두고있다.
이번 국회를 보는 이같은 시각의 차이는 앞으로의 국회운영에 있어 마찰을 빚을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번 국회의 가장 큰 쟁점은 역시 민한·국민당 등 야당이 제출해놓은 국회법 개정안·정치활동 피규제자 해제건의안 등 이른바 「정치의안」과 「6·28」「7·3」조치 및 이에따른 세법안 등 경제입법.
「적자예산」으로 비판되고있는 내년도 예산안도 논쟁의 여지가 없지 않으나 정부스스로도 긴축예산을 편성한데다 국내외 경제여건상 더 나은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어 줄일 수 있는 구석을 최대한 찾아보는 선에서 끝날 것 같다.
예산증가율이 조세증가율을 훨씬 넘고 ▲도매물가 5% ▲실질성장률 7·5% ▲국제수지적자 15억달러 ▲환율 7백60원선 유지 등 정부가 전망하는 내년도 경제지표가 너무 안이하다는 평이어서 민한당은 9·8%증가로 짜여진 예산규모를 6%증가선으로, 국민당은 금년도 보세수선으로 대폭 삭감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민한당이 금년도 경제성장률을 정부의 8%보다 낮은 6%로 주장해 결국 야당의 예측대로 7천억원 이상의 세수결함을 초래한 실적이 있기 때문에 삭감주장에 대한 야당의 자신감이 상당히 높아져 있다.
다만 야당도 종전의 「3천억원」혹은 「5천억원」과 같이 주먹구구식으로 미리 삭감목표를 설정하기보다는 ▲대미군사 외교강화를 통한 방위비 부담 감소 ▲국채발행의 타당성 ▲내년도 세수전망 ▲전시성 행정경비와 정치적 차원의 사업비삭감 등 정책적 차원에서의 심도있는 심의를 계획하고 있어 여야간 절충의 여지는 크다.
정치의안에 대해 민정당은 『제5공화국의 창건이념과 취지에 근본적으로 배치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야당과 대화를 하겠다』(이종찬 민정총무)는 태도여서 개혁입법의 거론조차 터부시했던 1년전에 비하면 다소 신축성 있는 자세다.
그러나 이번 국회에서 민정당이 정치의안처리에 응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민정당은 아직도 각 정당의 뿌리가 덜 내렸고, 정치적 안정기반구축이 요청된다고 보고 있기 때문에 정치의안 처리가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야당도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과거식의 극한투쟁이나 격돌은 윈치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있어 정치당안의 처리를 둘러싼 여야간의 의견대립이 파행적인 국회운영으로 연결될 가능성은 그렇게 크지 않다.
단지 정치의안논의가 본격화될 12월은 야당의 전당대회 전초무드가 고조될때라 당내사정이 국회운영에 영향을 미치게될 가능성은 배제하기 어렵다.
또 민정·민한 양대정당에 절대 유리하게 되어있는 현행 선거법에 불만을 갖고있는 국민당과 의정동우회가 정기국회과정에서 이를 문제삼을 뜻을 분명히 하고있어 이것도 하나의 교란요인이 될는지도 모른다.
국회일각에선 작년 정기국회에서 통금해제건의안·국가보위법 폐지안이 여야의 정치적 대화결실로 이뤄진것과 같이 이번 국회에서도 국민적 대화합을 모색하고 성숙된 의정상을 보여줄 수 있는 「정치력 작품」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있다.
민정당이 정치의안과 예산안 등을 바터하는식의 구시대적 정치협상은 일체 배격한다고 선언했지만 정치의안타결을 이번 국회활동의 기본목표로 내건 야당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정치적 명분」을 줄 현실적 필요에서도 이런 것을 검토할 가능성이 있다.
『야당을 궁지로 몰아넣고 혼자만 달리면 경주가 되겠느냐』(임종기 민한총무)는 말과 같이 정기국회를 결산하는 여야의 대화에 의한 「정치적 결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떻게 나타날지 궁금하다. <고흥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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