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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100대 드라마 ④경제] 39. 성큼 다가온 환경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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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봄의 추위 때 시작해 두 달 넘게 걸었다. 네 분을 지켜보면서 너무 힘들어 보여 차라리 한 분이 지쳐 쓰러지면 다른 분들도 함께 휴식을 취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2003년 봄 새만금 삼보일배를 지원하며 시종일관 함께 했던 환경운동연합 장지영 부장은 2년이 지난 지금도 “이들의 체력이 바닥까지 소진돼 밤마다 천막에서 치료를 받았다”고 회상했다.

그해 3월 28일부터 5월 31일까지 문규현 신부,수경 스님,김경일 원불교 교무,이희운 목사 등 네 사람의 성직자는 새만금 갯벌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선 간척사업을 막아야 한다며 전북 부안에서 서울까지 장장 310㎞를 세 걸음마다 한 번씩 절을 했다. 유치원생과 초등학생에서 장관과 도지사,국회의원 등 수많은 사람들이 동참했다.

하지만 먹고 살기에 바빠 환경 문제에 신경 쓸 틈이 없던 60∼70년대의 권위주의 시대 같았으면 삼보일배 행렬은 생각도 못할 일이었다.

당시엔 공단과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라면 아무런 거리낌 없이 바다와 갯벌을 메웠던 시절이었다. 환경문제가 없을 수 없었다.
68년 6월 중앙일보는 “서울시는 28일 청소장비 현대화 계획에 따라 오는 1일 진개 처리 삼륜차 50대를 추가 도입키로 했다”고 보도했다. 진개(塵芥)는 ‘먼지와 쓰레기’란 의미다. 지금은 아파트 단지 사이를 돌아다니는 작은 청소차의 디젤엔진을 천연가스 엔진으로 교체하는 게 환경뉴스지만 손수레와 우마차로 쓰레기를 수거하던 당시엔 삼륜차 도입이 뉴스였다.

쓰레기와 분뇨, 오폐수가 급격하게 늘었지만 처리할 곳도 없었다. 구의·청담·장안평 등 변두리 곳곳 저지대에 아무렇게나 묻었다. 악취가 진동하고 쥐와 파리가 들끓었다.

70년대는 사정이 더 나빴다. 서울시민이 하루에 내다버리는 연탄재 등 쓰레기는 많았지만 처리할 장비·인력은 부족했다. 며칠만 늦어도 큰길과 골목에 는 쓰레기가 산더미같이 쌓였다.

공단지역의 대기오염도 살인적이었다. 보사부의 78년 조사에 따르면 울산 공업지대의 아황산가스 오염농도는 무려 2.87ppm이었다. 환경기준치 0.05ppm의 57.4배나 됐다.

그런데도 당시 군사정권은 성장 제일주의를 앞세워 환경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을 철저하게 억눌렀다.

하지만 공단지역 공해문제는 끊임없이 터져나왔다. 85년 한국공해문제연구소가 ‘온산병’을 사회적 이슈로 제기했고, 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에는 환경단체도 하나 둘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90년대 들어선 페놀 사고 등 수질오염 사고가 반복되면서 환경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93년을 전후해 환경운동연합·녹색연합 등 전국 규모의 환경단체도 등장하고 언론에서도 환경 캠페인을 경쟁적으로 펼치면서 90년대 중반 ‘환경의 시대’가 활짝 열렸다.

환경단체들은 90년대 말부터 영월 동강댐과 새만금 사업 등 정부 주도의 대규모 개발사업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2000년 영월 동강댐 백지화를 이끌어냈고, 자신들이 중단시켰던 새만금 간척사업을 아예 포기하라고 강하게 압박할 정도로 파워가 강해졌다. 이때문에 “이제 환경단체가 반대하면 정부는 아무것도 못한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돌았고 ‘내 집 마당엔 안된다’는 님비현상도 심해져 우리 생활에 꼭 필요한 시설도 건설하지 못하는 일도 많아졌다.

그러나 환경운동은 그때부터 삼보일배까지가 절정이었다. 2001년 5월 정부는 새만금 공사 재개 결정을 내렸고, 2003년 참여정부는 삼보일배를 통한 요구도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은 개발과 보전, 그 어느 쪽도 확실한 주도권을 잡지 못한 채 논란은 여전하고 갈등도 계속되고 있다. 경부고속철도의 천성산 터널공사에 대한 환경조사도 몇 달째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또 정부는 ‘국가 지속가능 발전 비전’을 선언했다가도 이튿날엔 낙동강 을숙도 습지보호지역에 다리 건설을 허용하는 등 오락가락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한쪽에선 ‘환경 위기의 시대’라 하고, 다른 쪽에선 ‘환경 과잉의 시대’라 한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지난 40년 간의 압축 성장보다 더 빠르게 성장한 것이 환경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인 것은 분명하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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