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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100대 드라마 ④경제] 34. 창업과 수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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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1 = “나 아딕 늙디 않았디오. 아딕 현역입네다.”

▶ 1995년 2월 선친인 구자경 회장에게서 경영권을 넘겨받은 구본무 LG그룹 신임 회장.

1968년 10월 당시 68세였던 화신그룹의 박흥식 회장은 회사가 부도 나자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일제 식민지 시대 조선 최고의 갑부였다. 그러나 60년대 경제개발 붐을 타고 아시아 최대 규모의 인조견사 공장을 짓다가 망했다. 이후 재기하기 위해 몸부림을 쳤지만 다시 좌절, 94년 한많은 인생을 마감했다.

85년 2월 21일, 국내 10대그룹 중 하나였던 국제그룹 양정모 회장은 임원들을 모아놓고 ‘국제의 최후’를 얘기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내 잘못입니다. 운명에 승복합시다.”

이후 국제그룹은 산산조각이 났다. 모기업인 국제상사는 한일합섬으로, 연합철강은 동국제강 등으로 넘어갔다. 5공이 끝나자 양 회장은 ‘강압에 의한 해체’라며 그룹을 되찾기 위해 안간 힘을 썼지만 무위로 끝났다.

다시 20년 뒤인 2005년 6월 14일, 69세의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국민에게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말했다. 99년 해외로 도피한 지 만 6년 만에 자수하러 들어오는 비행기 안에서였다. 초췌하고 병색이 완연해 과거 재계 2위 재벌 총수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그는 공항에 내리자마자 분식회계와 사기대출 등의 혐의로 체포돼 수감됐다.

재계는 포연이 가실 날 없는 전쟁터다. 먹느냐, 먹히느냐의 약육강식과 생존경쟁의 원칙이 지배하는 무대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압축성장을 한 우리나라의 재계는 더욱 드라마틱했다. 정상을 달리다 쓰러진 기업인도 숱하게 많았다. 사운을 건 60년대의 철강전쟁에서 한국철강(신영술)을 누른 연합철강(권철현)과 일신제강(주창균)은 그 영광을 불과 10년 정도밖에 누리지 못했다. 국내 최초의 근대적 자동차 조립공장이었던 새나라자동차를 치열한 경합 끝에 인수해 환호성을 질렀던 신진자동차(김창원)도 10년 만에 주저앉았다.

‘제2의 김우중’이 되겠다며 70년대 중반 중동 특수경기를 등에 업고 반짝했던 율산(신선호)과 제세(이창우)의 꿈도 ‘일장춘몽’으로 끝났다. 세계 최대의 합판업체였던 동명목재(강석진)와 60년대 후반 수출실적 1위였던 천우사(전택보), 그리고 50∼60년대 삼성과 1위 다툼을 벌였던 삼호그룹(정재호)과 한국생사(김지태)도 지금은 흔적도 없어졌다.

수십 년간 재계의 전면에 섰던 동아(최원석), 해태(박건배), 삼미(김현철), 한보(정태수)등도 외환위기 전후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장면2 = “나는 이제 일선에서 후퇴합니다. 2대 회장에 자경을 추천하니 잘 도와 그룹이 더욱 발전할 수 있도록 힘써 주시기 바랍니다.”

70년 1월 5일 당시 서울역 앞에 있던 럭키(LG)그룹 회의실은 구씨 집안의 최연장자인 구철회 당시 럭키화학 사장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69년 12월 31일 타계한 LG그룹 창업주이자 구 사장의 맏형인 구인회 회장의 장례식을 치른 직후였다.이로써 LG는 2세 시대의 막을 열었다.

25년 뒤인 1995년 서울 여의도의 LG트윈타워 빌딩에선 구자경 회장과 3세인 본무 회장의 이·취임식이 열렸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야 아들이 그룹을 이어받던 한국 재계의 풍토에서 이례적인 일이었다.

LG의 주역이 40년간 ‘구인회→자경→본무’로 바뀐 것처럼 한국 재계의 주인공들도 대부분 바뀌었다.아직 일선에서 뛰고 있는 총수로는 롯데 신격호 회장이 유일하다시피 하다. 재계 역사상 양대 거목으로 꼽히는 이병철(삼성), 정주영(현대) 회장도 세상을 떠나 이건희(삼성), 정몽구(현대자동차)로 주역이 바뀌었다. 또 ‘최종건→종현→태원’(SK),‘조중훈→양호’(한진),‘김종희→승연’(한화),‘조홍제→석래’(효성) 등으로 달라졌다.

승계 과정에서 경영권을 둘러싼 집안 다툼으로 망한 그룹도 적지 않다. 우성(최주호), 삼도(김만중), 진로(장학엽) 등이 대표적이다. 반면 쌍용(김성곤→석원), 동아(최준문→원석), 대농(박용학→영일) 등은 승계는 별 문제 없었지만 후계자 잘못으로 스러졌다.

‘박두병→용곤→용오’로 순조롭게 승계되던 두산은 최근 ‘용성’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형제의 난’이 터졌으며, 현대그룹 역시 ‘왕자의 난’ 끝에 현대자동차(정몽구)·현대(현정은)·현대중공업(정몽준)으로 쪼개졌다.이처럼 재계 40년은 영고성쇠의 역사며 인생 무상의 무대이기도 하다.

김영욱 경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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