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유혹받는 수도권 공장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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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인천남동공단 1단지 24블록에 위치한 공장. 4500여 평 부지에는 마당을 가운데 두고 공장 건물이 'ㄷ'자형으로 들어서 있다. 겉에서 봤을 때는 한 업체 같지만, 이 공장 건물은 9개의 가구.목재 업체가 나눠쓰고 있다.

건물 한쪽에 있는 사무동에는 입주업체들이 사무실 하나씩을 차지하며 오밀조밀 모여 있고, 공장 건물 내부 곳곳에는 높은 벽이 서 있어 업체들을 구분하고 있다. 이들은 별도의 회사지만 간판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이 공장은 지난해 7월 초까지만 하더라도 J사가 혼자 써왔다. 하지만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서울에 본사를 둔 임대사업전문 업체에 건물과 부지를 팔았고, 임대사업자는 건물을 쪼개 업체들에 세를 내준 것이다. J사 자신도 규모를 줄여 임차공장 중 하나로 입주했다.

수도권의 대표적 산업단지인 남동.시화.반월공단에 소규모 임차 공장들이 급속히 늘고 있다. 기존 공장터 한켠을 빌려 생산시설만 들여놓은 채 영업활동을 하는 소규모 기업이 전체의 절반에 육박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산업단지공단에 따르면 6월 말 현재 남동.시화.반월공단 가동업체 1만1175개 중 남의 공장터에 세든 임차업체 수는 45.7%인 5108개. 5년 전 37% 선이던 비율이 9%포인트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남동공단은 임차업체가 전체 입주업체의 절반을 넘었고, 반월과 시화공단은 43% 선이다. 그나마 이런 수치도 공단 측이 내놓은 공식 통계일 뿐, 실제로는 등록되지 않은 임차 공장들이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공단 내 서울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최근 부동산 거래 10건 중 9건이 임대 거래"라고 말했다. 임대 거래가 늘며 5년 전 10개 정도에 불과했던 남동공단 내 부동산 중개업소도 지금은 40여 개로 늘어났다.

임차 공장이 급증하는 데에는 제조업에 대한 매력 감퇴 및 땅값 상승을 노린 투기 심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남동공단의 경우 현재 평균 땅값은 평당 300만원선, 임대료는 평당 보증금 25만원선에 월 2만~2만5000원선이다. 30억원을 들여 1000평짜리 공장을 사서 임대로 돌리면 연 10% 안팎의 수익률을 올릴 수 있다는 계산이다.

제조업 이익률이 5%를 넘기기 힘든 현실에서 공장 운영을 접고 임대업으로 전환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땅값 상승을 노린 투기 자금도 일부 가세하면서 수도권 공단은 임차 공장들로 넘쳐나고 있다. 1989년 완공 당시 평당 30만원가량이던 남동공단 부지는 최근 평당 300만원까지 올랐지만, 평당 700만원이 넘는 공단 주변 택지보다는 싸다. 남동공단 내 이천공인중개소 대표 김재영씨는 "최근 공단 땅을 사려고 오는 사람 10명 중 3명은 순수 임대사업자"라며 "토지와 아파트에 이어 공장터에 뭉칫돈이 몰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영세 제조업체들은 땅값 상승으로 자가 공장을 마련할 수 없어 세를 들 수밖에 없다. 남동공단에서 건축 내장재를 생산하고 있는 W사 사장은 "2003년 말 좀 더 넓은 공장을 찾아 안산에서 이곳으로 왔다"며 "땅값이 너무 올라 공장을 살 엄두를 못 내고 하는 수 없이 공장을 빌렸다"고 말했다.

소규모 임차 공장 증가는 각종 부작용도 낳고 있다. 공단의 적정 수용 규모를 초과하는 바람에 물류난과 주차난이 심해지는가 하면, 비싼 임대료 때문에 원가 부담이 커져 중소기업들의 경쟁력도 약해지고 있다.

최준호.이현상 기자, 이수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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