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적 교감속에 정당한 축재 도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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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기업경영의 길은 험하고 외롭다. 따라서 많은 기업인들은 사업에 몰두하다가도 때로는 일을 떠나 취미의 세계에 깊숙이 빠지기도 하면서 자신을 잊고 새로운 사업의 구상도 한다.
불황 속 기업경영의 바쁜 틈 속에서도 개인의 신앙생활을 지켜나가려는 기업인들의 모임인 종교실업인 단체들도 그 좋은 예다.
현재 국내에는 지난 52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한국기독실업인회를 비롯, 지난 79년 창립된 불교실업인회 및 가톨릭실업인회 등 3개 종교실업인 단체가 있다.
이들 단체의 회원들은 1주일에 한번씩, 또는 수시로 조찬기도회·조찬법회 등의 종교모임을 갖고 「불황의 고통」을 「함께 나누어」 위로와 용기를 얻거나, 혹은 「탐진치(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 삼독」에 빠지기 쉬운 「참 성품」을 되찾으려는 신앙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또 종교적인 교감 속에서 서로 사업정보도 교환하는 등 실질적인 도움도 주고받으며 때로는 종교인이나 정책당국자 등을 초정, 종교강연이나 시정설명을 듣기도 한다.
이들의 기업관도 일반기업인들과는 달리 독특하다. 즉 정당한 방법으로 돈을 열심히 버는 일은 하느님에 의한 「소명」, 혹은 부처님의 「원력」을 이루는 것일 뿐 추한 것도 또한 집착할 것도 아니라는 것이 이들 종교실업인 단체가 한결같이 표방하고 있는 기본정신이다.
이들 3단체 중 가장 오래되고 활동도 활발하며 또 재력있는 인사들이 가장 많이 참여하고 있는 곳은 기독실업인회.
지난 52년 6·25동란이 한창일 때 미 군사고문단의 일원이었던 힐 대령이 처음으로 국제기독실업인회(CBMC) 활동을 소개함으로써 대구와 경주에서 소수의 기업인과 의사 등 전문직업인들이 모여 협회활동을 시작했고 67년에는 황성수 전 국회부의장(현 변호사)이 초대의장이 되어 한국기독실업인회가 서울에서 창립총회를 가졌다.
이후 기독실업인회는 74년 김인득 현 벽산그룹회장이 회장직을 맡으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 77년에는 제1의 세계기독실업인대회를 서울에서 열기도 했다. 김 회장은 사업못지 않게 협회일에도 열심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회장의 후임으로는 최봉섭 한국유리 회장이 78년부터 기독실업인회를 이끌었고 현재는 지난2월 새로 선출된 서정한 한국합금철공업 사장이 회장직을 맡고있다.
현재 회원은 약 1천4백여명. 협회활동에 열심인 회원 중에는 장치혁 고려합섬 회장, 유상근 명지학원 이사장, 이봉수 신일학원 이사장, 정태성 성창기업 회장, 나석호 변호사 등등의 인사들이 눈에 띈다.
『모여서(사도행전) 기도하고(골로세서) 배워서(디모데후서) 전하여(사도행전) 비즈니스세계에 하느님을 모시자』를 모토로 삼고있는 기독실업인회의 특수성은 4가지 「금기」와 1가지 「명령」에 잘 나타나있다.
즉 4가지 금기란 첫째 설교를 하지 말 것(목사가 아니므로), 둘째 교파이야기를 하지 말 것, 세째 정치이야기를 하지 말 것, 네째 시간을 초과하지 말 것 등이며 단 한가지 명령은 전도. 특히 4번째 금기사항인 「시간을 초과하지 말 것」은 기독실업인회가 시간에 쫓기는 기업인들의 모임임을 잘 나타내는 것으로서 모든 집회는 아침7시부터 8시30분까지, 혹은 정오부터 오후1시까지 꼭 식사를 겸해 정시에 끝나는 것이 철칙으로 되어있다.
또 대부분 집회시간의 처음 절반은 인사와 식사, 나머지 절반은 기도와 간증으로 진행되는 것이 상례다.
한편 지난 79년1월 창립법회를 가진 불교실업인회도 그간 꾸준히 활동을 계속해 현재 약 3백여명의 기업인들이 회원으로 가입돼있다. 이들은 매달 한번씩 조찬기도법회를 갖고 때로는 주말을 이용, 철야단식정진을 하면서 보살도를 깨치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때때로 고아원이나 양로원 등을 찾아 보시를 하기도 한다.
조찬기도법회에는 무진장 큰스님, 이성수 큰스님 등이 나와 법어를 설하기도 하고 정재각 정신문화연구원장, 김지견 원광대교수, 황산덕 전 법무부장관 등도 가끔 강연을 한다.
『사업을 하면서 수행을 같이하여 마음을 비움으로써 재물에의 집착을 끊는 것』을 기본정신으로 하는 이 불교실업인회의 초대회장은 채원식 변호사(전 치안국장)가 지냈고 그후 2대 한갑진 회장(한진영화사 사장), 3대 이석명 회장(고려개발 사장)을 거쳐 현재는 유홍우 유성기업 사장이 4대 회장직을 맡고있다.
이밖에 정형식 일양약품 사장, 이상준 삼화왕관 사장, 김현곤 한국냉장 사장 등이 회원으로 가입해있고 최근에는 정세영 현대자동차 사장도 불교실업인회에 관심을 갖고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가장 역사가 짧은 가톨릭실업인회는 지난 79년7월 이종욱 삼익건설 회장을 초대회장으로 추대해서 창립, 현재 조동식 동원전자 사장, 김창성 전방사장 등 약 1백80여명의 기업인들이 가입돼있다.
유덕종 전 상업은행장이 최근까지 회장직을 맡고있었고 지금은 한때 인기방송프로 「재치문답」의 고정출연자였던 엄익채 서린종합건설 회장이 가톨릭실업인협회를 이끌고 있다. <김재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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