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염과 관료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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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해방37년동안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성장한 것은 무엇일까?
이런 질문용 누구에게 던져봐도 대개 세가지를 꼽는다. 곧 군대와 기업과 뷰로크러시.
여기에 비하면 정당이며, 문화계며, 학계등은 거의 제자리걸음을 한 것이나 다름 없다.
실제로 6·25직전의 국군과 지금의 국군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군대는 근대화했으며, 월남전에서 보여준 바와같이 세계 어느 곳에 내 보내도 뒤지지 않을 만큼 강대한 조직이 되었다.
기업도 세계 5백대기업에 끼는 기업체가 10개나 될 정도로 급성장하였다.
10년전인가 미국여행을 했을때 아메리카항공사의 기내에서 주는 음시에 딸려나온 나이프와 포크에 「메이드 인 코리아」라 적혀있는 것을 보고 감격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것도 옛 얘기가 되었다.
군대나 기업에 못지 않게 놀랍도록 성장한 것은 뷰로크러시다.
그동안 아무리 정권이 바뀌고 사회가 걷잡을수 없는 혼란에 빠져있을 때라도 사람들은 버스로 출·퇴근을 하고, 신문을 읽고, 세금을 내고, 은행에 예금을 했다. 기차도 평상시와 조금도 다름없이 운행되었으며 전매청에서는 담배가 생산되어 시골구석 담배가게에까지 배달되었다. 그것은 뭣보다도 관청의 뷰로크러시가 단단하게 틀잡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뷰로크러시 (관료제도) 란 「막스·베버」의 정의를 따르자면 조직의 목적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규척적인 활동, 곧 공적의무의 명확한 분배, 그리고 의무의 수행에 필요한 명령권의명확한 분배등에 의하여 이뤄진다.
이러한 일정한 의무와 권한의 크고 작고에 따라 뷰로크러시 속에서 엄격한 상하관계가 형성된다. 뷰로크러시의 틀이 잘 잡혀 있으면 그럴수록 더욱 서로가 상하관계를 따라 마치 기계의 작은 톱니들처럼 잘 얽혀서 돌아간다.
다시 말해서 뷰로크러시는 프러시아군대처럼 정밀·신속·명확·지속·통일·엄격한 복종등을 뜻하게 된다. 여기에 또 비밀의 특성이 가미된다.
그러나 뷰로크러시가 틀잡힌 다음에는 그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완연한 기계의 부품처럼 되어 버리고 주체적인 판단의 여지가 없어진다. 이어는 판단력마저 잃게된다. 그리하여 행동의 주체로서의 사람보다 그 사람이 차지하는 자리가 더 중요해진다. 흔히 부정적인 뜻에서 말하는 관료주의가 이래서 생겨난다.
당초에 뷰로크러시 (bureau-cracy)라는 말은 「뷰로」 (bu-reau·사무실 또는 책상)에서부터 나왔다.
뷰로에서는 간의·결재·허가등 모든 것이 문서라는 형식을 거치지 않고는 이뤄지지 않는다. 뷰로크러시가 커지고 복잡해질수록 요식·양식등도 까다로와진다. 그만큼 도장도 많이 찍히게 된다.
이리하여 사람들은 어느 사이엔가 주체성 내지는 인간성마저 잃게된다. 책임이나 의무도자기 책상, 곧 자리가 요구하는 만큼만 이행하면 된다.
다시 말해서 문서가 돌아가도록 자기가 맡은 칸에 도장만찍어서, 뷰로크러시라는 거대한기계의 은행에 차질만 없게하면 되는 것이다.
일도 자기가 그 자리에 있는 동안에 대해서만 책임지면 된다. 그 이상에 대해서까지 책임지는 것을 뷰로크러시는 요구하지 않는다.
지난 몇해동안 정부는 「취락구조개선사업」의 하나로 군예산으로 땅을 사들여 정지작업을 해주고 장기저리로 주택자금을 융자해주는등 각종혜택을 주어가며 농촌주택을 짓도록 장려했었다. 건축허가등 행정처리는 나중에 해주기로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중의 일부는 아직 까지도 무허가건물이 된채로있다. 이유인즉『건축법상 도시계획구역안의 연지지역에는 허가 없이 건축을 할수 없다』 는 것이다.
우선 집부터 지으면 나중에 허가를 내주겠다고 말한 관청과 실제로 허가를 내주는 관청과는 소관이 다르다. 아니면 허가를 내주겠다고 약속한 사람이 그 자리를 떠나고 딴 사람이 들어앉은 것이다.
나중에게는 전임자가 약속한일에 대해서까지 책임질 필요가 조금도 없다. 전임자 또한 자기가 그 자리에 있는 동안만 아무 말썽이 없으면 된다. 그 다음이야 어떻게 되든 그것은 후임자가 걱정할 일이다.
이렇게 되도록 많은 권한과, 되도록 작은 책임·의무을 맡도록 애쓰는 것이 바로 관료주의다.
이따금 말썽스런 사건을 둘러싸고 이웃 경찰서끼리, 또는 관계관서끼리 자기네 소관이 아니라며 발뺌을 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최근에 극성을 부리고 있는 뇌염이 지난 주말까지 전국에서4백60여명이나 걸렸다고 한다.당국 발표로는 그중에서 5명이 진성으로 사망한데 비해 의증으로 죽은 환자는 25명이나 된다.
「의증」 뇌염은 진성보다 훨씬 덜 무서은 병으로 되어있다. 그런「의증」에 의한 사망률이 진성의 경우보다 오히려 5배나 더 크다면 굳이 전성과 의성과를 가려내야 할 이유가 없을것 같지만 방역당국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원래가 방역당국은 진성에 대한 방역의 의무만 있지 진성처럼 무서운 전염병이 아닌 의증에 대하여는 간접적인 의무밖에는 없다. 따라서 지금 특히 전북지방에서 극성을 부리고 있는 것이 의증뇌염이라면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다.
그뿐이 아니라 진성인지 아닌지가 분명치 않은 경우들을 모두 의증으로 돌린다면『작년보다 환자수가 훨씬 적다』 고 자랑할 수도 있게된다. 그만큼 방역예방대책을 잘 썼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찬바람과 함께 모기가 자취를 감추면 다시 내년 이맘때 전국이 벌컥 뒤집혀질때까지 뇌염은 말끔히 잊어버릴 것이다.
뷰로크러시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어 놓는 것이다. 내년 이맘때까지 같은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니 이달만 잘 넘기면 그만이다. 이렇게 거의 모든 뷰로크래트들은.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뷰로크러시에는 관료제도와 관료주의라는 두가지 듯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유별나게 살찐 것은 바로 관료주의뿐인 것만 같다. <소설『지하도시』는 6면에>
홍사중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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