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속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요즘 어느 성직자의 환속이 화제가 되었다. 범인이 감히 한 종교인의 깊은 고뇌를 가늠할 길은 없지만, 오늘의 사회에 비친 성직자상은 한번쯤 생각해보고 싶다.
최근 불교계의 일각에서도 승려의 대처 허용문제를 거론한 일이 있었다. 결국 종회에 상정도 못하고 비토되고 말았다. 필경 사회의 차가운 시선도 의식한 것 같다.
오늘과 같은 개방사회에서 유독 종교인의 수계만 그처럼 엄격한 기준을 요구하는 것은 부자연스러운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처승문제에서 세간의 반응이 차가왔던 것은 의외다. 『그래도 종교인만은…』이라는 갈망에 가까운 기대가 있는 것이다.
역시 독신을 강요하는 가톨릭 사제의 결혼문제도 잊을만하면 거론되곤 한다. 그때마다 바티칸의 공식기구나 교황은 단호한 어조로 『노!』한다.
「문명사회」, 「개방사회」의 모델로 통하는 미국에선 해마다 30여명의 신부들이 환속을 하고있다. 서독과 같은 나라엔 신부들의 신상상담을 위한 전화까지 가설되어있다. 「영혼」을 구하는 생명의 전화다. 사제들도 역시 인간의 숲속에서 사는 보통사람의 하나라고 생각하면 신상의 고민이 없을 수 없다.
분명 성직자는 성인은 아니다. 그러나 이들은 보통사람과 다른 점이 있다. 우선 의식을 집전할 때나 아니면 일상중에도 성의를 입고있다. 가톨릭에선 그것을 「수단」(soutane)이라고 한다.
어쨌든 이것 하나만으로도 이들은 어떤 상징성을 몸에 지닌다. 성인은 아니라도 성인에 가까운 생활과 생각과 행동을 스스로 강요받고 있는 것이다.
신부는 사제로 서품(서품)을 받을 때 이런 기도를 바친다.
『주여, 비오니… 봉사의 직무를 충실히 수행하도록 성신칠은으로 굳세게 하소서.』
성신칠은은 지혜, 통달, 의견, 강의, 지식, 효경, 경외를 뜻한다.
여기에 덧붙여 「꾸밈없는 사랑」, 「병고와 가난한 이들에 대한 폭넓은 심려」, 「자제할 줄 아는 권리」, 「티없는 정결」을 하느님에게 서약한다.
불교의 승려들도 마찬가지다. 불도를 닦는 사미(사미)들은 10계를 지켜야 한다. ⓛ중생을 죽이지 말라 ②훔치지 말라 ③음행하지 말라 ④거짓말을 하지 말라 ⑤술을 마시지 말라 ⑥꽃다발을 쓰거나 향을 바르지 말라 ⑦노래하고 춤추고 풍류를 잡히지 말며 일부러 가서 구경하지도 말라 ⑧높고 넓은 평상에 앉지 말라 ⑨때아닌 적에 먹지 말라 ⑩제빛인 금이나 물들인 은이나 다른 보물을 갖지 말라.
어느 종교든 성직자들에겐 자경과 자제와 자각을 요구한다. 요구하기보다는 그런 극기와 인내와 자기 수련이 성직자의 내면에 축적될 때 비로소 그는 존경의 대상이 되며, 그 종교도 장엄성(solemnity)을 갖게된다.
이런 것을 감당할 수 없다면 그는 스스로 성직자의 길을 아예 걷지 말아야 할 것이다. 성직자는 성인은 아니지만 보통사람도 아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