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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어학연수 꼭 가야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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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해외로 어학연수를 떠나는 대학생이 많다. 이 대열에 못 끼이면 바보같이 느껴질 정도다. 물론 잘만 하면 보약이다. 별 생각 없이 나가 지내다 보면 시간 낭비, 돈 낭비로 끝나기도 한다. 주변에는 발군의 외국어 실력을 갖춘 국내 토종파도 적지 않다. 결국 외국어 습득은 자신의 의지와 노력에 달린 셈이다. 해외 어학연수에 대한 여대생 두 명의 의견을 들어본다.

연수파
영어실력 쑥쑥 느는 가장 확실한 방법

지난해 9월 중순부터 올해 3월 초까지 6개월 동안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다녀왔다. 졸업을 앞둔 불안감과 앞으로의 진로에 대한 고민이 내 등을 떠민 배경의 하나다. 한 발 앞서 외국물을 먹고 돌아온 친구들의 달라진 모습도 부러웠다. 무엇보다 대학 4학년 1학기 때 중학교 영어 교생실습을 하면서 나의 부족한 영어 실력을 절감했다.

현지에 도착하면서부터 이왕 멀리까지 온 마당에 뻔뻔해지기로 결심했다. 부모님께 손 벌려 받아 낸 큰돈이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수줍고 부끄럼을 많이 타는 나 자신부터 버리기로 했다. 어차피 영어 배우러 왔고, 내가 한 영어 했다면 이렇게 물 건너 오지도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틀려도 부끄러워하지 말라!' ' 나름대로 열심히 영어를 쓰는데 그래도 알아먹지 못하는 상대방도 문제가 있다!'라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다.

어학연수의 장점은 실생활에서 배우는 살아 있는 언어다. 우선 홈스테이 방에서 머무는 시간을 최대한 줄였다. 현지인 가족 사이에 끼어 앉아 TV를 보면서 짧은 영어로 자주 말을 걸었다. 말이 막히면 되도록 불쌍한 표정을 짓는 것도 방법이다. 멀리 타향까지 와 영어를 배우려는 젊은 처자의 열정이 얼마나 갸륵한가. 그러다 보니 어느 사이에 그들이 먼저 영작문을 손봐 주겠다, 무슨 궁금한 게 없느냐는 둥 나를 돕겠다며 다가왔다.

기왕 떠나온 마당에 한국에 관한 모든 것을 잊기로 했다. 중독되다시피 했던 인터넷부터 끊었다. 한국인 친구들도 고민거리였다. 서로 외롭고 힘든 생활에 아예 못본 체하거나 의도적으로 피하는 것은 무리다. 그래서 함께 놀되, 그 무리에는 항상 외국인 친구들을 포함시키는 방법을 썼다. 특히 학원에서 제공하는 야외활동은 빼놓지 않으려고 기를 썼다. 처음 보는 허연 백인 남자와 나이트클럽에서 춤도 추고, 파티가 열리면 못 마시는 술잔을 들고 용감하게 군중 사이를 휘젓고 다녔다. 영화 관람이나 여행에도 꼬박꼬박 참가했다. 그곳 문화에 익숙해질수록 내 혀에도 버터 칠이 되어감을 느꼈다.

사실 어학연수를 결정하고 떠나기까지 적지 않은 고민이 있었다. 우선 돈이 문제였다. 한번도 떨어져 살아 본 적이 없는 말만한 딸을 품에서 내보내자니 부모님의 걱정도 대단했다. 너무 급하게 어학연수를 결정했던 터라 한 달 만에 모든 수속을 마치고 떠나야 하는 촉박한 일정도 부담스러웠다.

정신없는 속에서도 캐나다 토론토를 목적지로 정한 것은 되도록 아름다운 풍경에서 다양한 경험을 즐기고 싶어서였다. 조그맣고 따분한 시골마을에서 영어만 공부하고 싶진 않았다. 대신 학원은 신중하게 선택했다. 아무래도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영어를 배우는 곳이 학원이기 때문이다. 보통 어학연수를 가면 처음에는 ESL코스를 듣는데, 한국 사람이 많이 없는 큰 학원을 권하고 싶다. 돌이켜보면 토론토행 비행기에서의 13시간은 매우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혼자서 연수에 대한 각오와 목표를 다졌다. 현지에서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그 13시간을 떠올리며 자신을 추슬렀다.

어학연수는 무엇보다 시간과의 싸움이다. 첫 한 달은 기대한 만큼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아 조바심도 나고, 그래서 스트레스가 보통이 아니었다. 욕심이 앞섰기 때문일까. TV를 봐도 잘 안 들리고 떠듬거리는 영어로 현지인과의 대화도 3분을 넘기기 힘들었다.

어학연수 성공의 비결은 뻔뻔함과 함께 무엇보다 포기하지 않는 것이 최고다. 다섯 달 정도 지나니 TV 앞에서 시트콤을 보며 웃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영화관에서 자막 없이 흐름을 따라갈 수 있게 되었다. 연수가 끝날 무렵에는 귀국하기 싫다는 아쉬움까지 들 정도였다. 두려움을 안고 건너가 드디어 무사히 돌아온 것이다.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것도 빼놓을 수 없는 귀중한 자산이다.

어학연수만 갔다 오면 누구나 다 영어를 잘 하게 된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며 환상이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부딪치면 어느 방식보다 영어에 빨리 익숙해지고, 자기 발전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30년 뒤에 내 아이가 어학연수를 간다고 하면 나는 달러빚을 내서라도 밀어줄 생각이다.

정재령(연세대 문헌정보.영문과 4년)

국내파

열심히 읽고 말하고 …국내서도 하기 나름

"엄마 나 미국 1년만 보내주지!" 고등학교 때 내가 엄마에게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다. 엄마에게 무엇인가 시비 걸고 싶은 나이였고, 2년 정도만 미국에 다녀와도 혀가 완전히 다른 수준으로 꼬여 있었던 그들의 비법에 대해 질투심을 느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것은 일단 차원이 달라 보였고, 영어 결핍증에 걸려 있던 나로서는 2% 부족한 그곳을 긁어줄 단 하나의 대안으로 보였다.

그러나 내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대신 엄마는 교과서를 팽개치고 다른 책만 보는 나에게 단 한번 잔소리도 하지 않고 지켜봐 주었다. 그리고 영어라는 괴물을 생각할 때 함께 떠올릴 수 있는 따뜻한 어린시절을 선물해 주었다. 내게 영어는 '어린 왕자'의 컬러풀한 원서에서, 사막에서 쓰러지는 왕자의 연약한 뒷모습이었고 구렁이였고,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비밀'의 초콜릿 강이었다.

어린 나의 영어선생님은 엄마였다. 1960년대 구식 교육을 받은 엄마는 부산 사투리까지 섞인 발음을 했지만, 내게 시간을 정해놓고 영어 소설책을 같이 읽고 해석해 주었다. 일부러 얇고 번역된 동화책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히치콕의 '새(birds)', 에드거 앨런 포의 시들, 무서운 이야기 책들을 사 주었다. 신기한 것은 그때 내가 읽고 외운 영어 문장을 거의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까먹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적어도 중학교 때까지 나는 너무 영어에 자신있는 아이였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영어의 벽을 절감했다. 나는 국제고등학교에 진학했고, 거기에는 영어를 잘하는 국제화의 전형인 친구가 적지 않았다. 나의 영어는 그들을 알아 가면서 수준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미국에서 태어나거나, 한국어가 모국어가 되기 전에 외국으로 이주해 고등교육을 받은 친구들의 영어는 본능적이었고, 그것은 언어에 있어 계급 차와 같은 것으로 다가왔다.

한동안 학교 성적이나 받으면 된다는 식으로 영어 공부를 거의 하지 않았다. 대신 정말 많은 한국 소설을 읽었다. 그때는 아무 생각 없이 읽었으나 나중에 그것들이 영어를 이해하는 데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다. 영어는 아니지만, 나는 한국어로 된 책들을 읽으며 언어 전반에 대한 감각이 업그레이드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다시 영어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막연히 외국 대학에 진학하고 싶다고 생각했었고 정말 열심히 영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산골짜기에 틀어박힌 기숙사 학교에선 학원은 꿈도 꾸기 어려웠다. 국제화 전형 친구들과 학교 영어선생님이 기댈 수 있는 전부였다. 늘 밤까지 학교에 남아 계신 영어선생님을 괴롭혔고, 자습실에 가면 옆 자리에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혜승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혜승이는 모르는 게 있으면 뚝딱뚝딱 해결해 주고 내가 부족한 본능적 감각 부분을 채워 주었다. 나의 영어를 키운 것은 8할이 책과 주변 사람들인 것이다.

'영어 공부 하지 마라!' '3개월 만에 영어 원어민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요즘 자주 그런 문구를 접하며 나는 문득 한 언어를 이해한다는 것이 그렇게 간단한 일인가 하는 생각을 한다. 아직도 나는 절대로 원어민의 반의 반 정도도 영어를 할 수 없다. 그건 태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아직도 관사가 헷갈리고, 문법 사항이 나오면 머리로 먼저 계산을 한다. 그러나 영어로 소설을 읽고,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나의 느낌과 의견을 전달하는 데 크게 불편함이 없을 정도의 영어 실력을 갖추었으면 되지 않는가. 지금도 찾고자 한다면 우리 주변에서 인터넷과 서점을 통해 손쉽게 영어를 접할 수 있고 영어 방송도 너무나 많다. '말'을 배우는 것은 '추억'같은 것을 쌓아 나가는 것이라고 본다. 어학연수 1년 만에, 혹은 3개월 만에 마스터한 그 언어가 앞으로 문화와 문학을 이해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가. 우리 집 내 방에서 배 깔고 읽은 영어로 된 '가필드' 만화책 전집은 긴긴 시간이 지난 지금도 나를 웃게 만든다. 그런 기억을 바탕으로 언어는 조금씩 쌓이는 것이리라. 무식한 방법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영어가 나 하기 나름이라는 사실을 믿는다.

윤지애(서울대 언어학과 4년)

***어학연수 성공 10계명

(1) 내 실력을 파악하자

실력을 과장하지도, 낮추지도 말아야 한다.

(2) 연수지 선택이 중요하다

나와 맞지 않으면 실망할 뿐.

(3) 기간별 목표를 세우자

실천 가능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초심을 잃지 말라.

(4) 자신감을 갖자

스스로를 칭찬한다.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라.

(5) 영어 실력은 꼭 공부 시간과 비례하지 않는다

다양한 기회를 접하고,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하자.

(6) 영어로 일기를 써라

문장력.어휘.표현이 향상된다.

(7) 건강관리가 우선이다

현지 스포츠팀에 들어가는 것도 방법이다.

(8) 문화 충격과 향수병을 이겨내자

외로우면 주변에 주저 없이 도움을 청한다.

(9) 현지 가정에서 홈스테이가 좋다

어느새 그 나라를 이해하고 영어도 는다.

(10) 도전정신을 잃지 말자

새로운 환경을 주저 없이 접하라. 배낭여행도 강추!

자료: 주한 캐나다교육원(www.studycanada.ca/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