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도청 '핵폭풍'] DJ는 가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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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김대중(DJ) 전 대통령 측은 5일 국정원의 발표 직후 "국민에게 심려를 끼쳐 드려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최경환 비서관 명의로 된 보도자료에서 "국민의 정부에서 불법 감청이 있었다는 발표에 대해 놀라움을 금할 수 없고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라며 유감을 표했다.

DJ 측은 도청의 '피해자'에서 하루아침에 '가해자'로 처지가 뒤바뀌어버린 데 대해 당혹해했다. 최 비서관은 "김 전 대통령은 중앙정보부.안기부의 최대 희생자로서 도청.정치사찰.공작.미행감시.고문을 없애라고 역대 국정원장에게 지시했다. 당선되자마자 도청팀을 해체하도록 했다"며 "이러한 의지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부 불법 행위가 있었다면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며 앞으로 조사를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최 비서관은 이어 "김 전 대통령은 국정원장의 보고 때에도 불법적 정보수집을 하지 못하도록 강조했으며 어떤 불법활동도 보고받은 바 없다. 퇴임할 때까지 계속 그런 의사를 강조해 왔다"고 덧붙였다.

DJ는 이날 TV로 생중계된 김승규 국정원장의 발표 내용을 시청했다고 한다. 그러고는 투석 치료에 들어가기 직전 최 비서관을 불러 이번 사안에 대한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교동계 출신 정치인 등 주변에선 "충격적"이라며 술렁댔다. 임동원 전 국정원장(1999년 12월~2001년 3월)은 "원장 시절 불법 감청에 대해 전혀 보고받은 바 없다"며 "국민의 정부에서 불법감청이 있었다는 발표를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한 전직 의원은 역대 국정원장을 겨냥, "대통령이 절대 도청을 하지 말라고 했으면 그대로 따라야 하는 것 아니냐"며 "명백한 직무유기"라고 비판했다.

최 비서관도 "미림팀 불법 도청의 핵심은 대통령 당선 이전 5년 동안 김 전 대통령을 정치적으로 매장하고 대통령 당선을 저지하려 한 것"이라며 "김 전 대통령은 휴대전화는 도청이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것으로 보고받았고 지금까지도 그렇게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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