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도청 '핵폭풍'] 국정원 도청 핵심 '과학보안국'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국정원(옛 안기부) 중의 국정원' '음지 중에서도 음지'.

국정원 직원들은 도.감청을 담당했던 과학보안국을 이렇게 불렀다. 퇴임한 전 과학보안국장 A씨는 "과학보안국은 국내 정보를 담당하는 1차장(DJ 정부 때 2차장으로 바뀜) 산하로 돼 있지만 중요 사안은 부장(원장)에게 대부분 직보(직접 보고)했다"고 말했다. 그는 "국정원 내부에서도 이 조직에 대해선 알려고 하지 않는 게 불문율"이라며 "첨단 장비 구입 등 예산도 가장 많이 썼다"고 했다.

1961년 중앙정보부 출범과 함께 운영되기 시작한 감청 부서는 정보통신기술의 발달과 함께 핵심 조직으로 확대 개편돼 왔다. 전직 국정원 고위 간부는 "국내 정치인을 상대로 한 정보 수집은 통치권 유지를 위해 필수"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문민정부라는 YS 정부도 예외가 아니었다. 과거 안기부에 근무한 정병주씨는 98년 '2급비밀'이라는 책의 미공개 원고에서 "과학보안국이 전화국 협조를 받아 불법 감청을 자행했고 이 조직은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난 뒤 오히려 더 커졌다"고 폭로했다.

YS 정부에서 안기부의 도.감청은 대북 파트와 국내 파트로 이원화됐다. 5국이 국내 부분을 담당했다. 안기부에 파견돼 감찰관으로 일했던 한 인사는 5국을 통상 요인감시 부서로 불렀다고 증언했다.

당시 도청은 도청 대상 인사의 전화를 24시간 녹음한 뒤 녹음된 테이프를 푸는 방식이었다. 근무 강도가 세 3교대로 일했다고 한다. 95년에 이미 안기부의 도청 기술은 150m 거리에서 음성과 전화 감청이 가능한 음파탐지기를 보유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통상 도청 담당 부서를 과학보안국으로 지칭한 것도 이 시점이었다.

과학보안국이 대규모 장비와 인원으로 본부에서 전화 도청을 한 반면 미림팀은 소규모 팀으로 꾸려져 요인들의 대화를 직접 엿듣는, 일종의 출장 도청을 담당한 조직이다. 과학보안국의 녹취록은 과학보안국장이 관리했지만 별동대로 활동해 온 미림팀은 예외였다. 오정소씨가 국장일 때는 국장에게, 국내 담당 차장으로 승진했을 때는 차장에게 직보했다. 이 때문에 체계적인 관리가 이뤄지지 않았고 결국 정보기관의 도청 테이프 누설이라는 비극을 낳았다.

DJ 정부에서 안기부는 국정원으로 이름을 바꿨다. 일부 기구 개편도 단행했다. 그러나 과학보안국의 역할은 그대로 남았다. 이때 과학보안국에 근무했던 한 전직 직원은 "그 당시 오히려 설비가 최신화됐다"면서 "무선 전화 도청은 물론 내선 전화 도청까지 가능한 수준이 됐다"고 말했다.

국정원의 도청 장비 구입은 민간 에이전트를 통하기 때문에 국정원이 구입했는지를 외부에선 알 수 없다. 비행기로 들여온 장비를 국정원 직원이 공항 보세구역으로 차를 몰고 들어가 실어 내오는 식이었다. 어디에도 기록이 남지 않았다. 이때 시.도 지부별로도 도청팀이 별도로 운영됐다고 한다.

과학보안국은 도청 기술의 자체 개발에도 노력했다. DJ 정부 초기 박사급 정보통신 전문가를 대거 영입했다는 설이 돌았다.

국정원은 2002년 대선 국면에서 한나라당이 "국정원에서 국내 감청을 위해 직원 300여 명의 도청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고 폭로하자 과학보안국을 해체했다고 발표했다. 그러고는 감청 전문 요원들을 여러 실.국으로 분산했다.

박승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