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도청 '핵폭풍'] 도청 시인한 국정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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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왼쪽)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이 5일 현 정부에서는 불법도청을 하고 있지 않다고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사진오른쪽)서울 종로 세운상가에 도청감지기 등을 판매하는 가게들이 성업 중이다. 김태성 기자

정보기관이 불법 도청의 달콤한 유혹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국가정보원이 5일 과거 정부에서의 불법 도청은 모두 시인하면서도 현 정부에서는 그런 일이 없다고 선을 긋고 나섰지만 의심은 여전하다. 철저하게 베일에 싸인 정보기관 내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국민은 도무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국정원 스스로 도청과 관련해 거짓말을 거듭해 와 신뢰가 땅에 떨어진 상태다.

◆ 마약과 같은 도청 유혹=정보기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도청 자료야말로 진짜 정보로 통한다. 감시 대상자의 가장 솔직한 생각이 담겨 있는 것이 바로 도청 자료다. 수백 명의 IO(정보수집요원)를 투입하고 막대한 비용을 들여 나오는 정보보다 한두 건의 도.감청 보고서가 더 정확한 정보 판단 근거가 될 수 있다. 그래서 한번 맛을 들이면 마약처럼 끊기 어렵다는 게 정보 관계자의 말이다.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이 국정원의 불법 도청 시인 직후 "참여정부에선 불법 도청은 일절 없다는 걸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다"고 했지만 국민의 도청 불안감을 해소시키지 못하는 건 이런 정황에서다.

더구나 문 수석 자신도 현재 국정원이 도청을 하지 않고 있다는 뚜렷한 근거를 대지는 못했다. "국정원에 누차 확인했고 지금은 청와대가 국정원으로부터 정치 정보를 보고받지 않고 있기 때문"이란 정도였다.

합법과 불법 사이에 명확한 경계가 있을 수 없는 정보 활동의 속성상 누구도 도청과 같은 민감한 사안에 대해 딱 부러지는 언급을 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 휴대전화 도청 더 이상 없을까=김승규 국정원장은 휴대전화 도.감청 사실을 7년 넘게 숨기며 거짓설명을 해온 데 대해 "국민의 실생활과 밀접한 데다 사회적 파장이 우려됐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관련 장비도 2002년 3월 완전 폐기해 더 이상은 휴대전화 도청이 없다는 얘기다.

그렇지만 휴대전화 도청과 관련한 기술.장비를 모두 폐기했다는 주장은 믿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도청 근절을 위한 국정원의 의지는 이해하지만 이미 가능해진 휴대전화 도청을 포기했다는 건 정보기관으로서의 직무유기에 가깝다는 것이다. 이들 장비는 국내뿐 아니라 대공, 외사 첩보 활동에도 매우 긴요하다. 이 같은 대공, 외사 첩보 수집 활동에는 고성능 장비들이 투입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기도 하다.

국정원은 과거 휴대전화 도청장비 수입 의혹 등이 제기되자 한때 관련 사실을 시인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대공, 외사 관련 수사에서의 효용성 때문에 계속 부인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영종.이가영 기자 <yjlee@joongang.co.kr>
사진=김태성 기자 <t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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