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정부 때도 4년간 불법 도청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1면

▶ 김승규 국정원장이 5일 불법 도청에 대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 뒤 인사하고 있다. 김태성 기자

국가정보원 김승규 원장은 5일 '국정원의 과거 불법 도청 실태 보고'를 발표했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인 국민의 정부에서도 국정원에 의한 불법 도청이 자행됐다는 내용이다. 특히 정부가 여러 차례 "휴대전화 도청은 불가능하다"고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가능하며, 휴대전화 도청을 해 왔다고 밝혀 충격을 주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에서도 국정원이 불법 도.감청을 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정보기관의 불법 도청이 1998년 이후에도 계속됐음이 당국에 의해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국정원은 5일 "61년 5월 중앙정보부 창설 이후 설치돼 60명 내외의 단(團) 규모로 확대된 감청기구가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 시기에도 유지됐다"며 "디지털 휴대전화 상용화에 따라 98년 5월~2002년 3월 휴대전화 도청 장비를 개발해 불법 감청에 일부 사용했다"고 밝혔다. 국정원측은 "유선전화에 대해서도 일부 불법 감청이 있었다"고 했다.

국정원은 비밀조직 미림팀을 운용했던 문민정부 시절과 달리 국민의 정부 시절엔 공식 조직에서 불법 감청을 했다고 설명했다. 국정원 관계자는 "대부분 합법적인 감청 업무를 하다 극히 제한적으로 (장비를)불법 감청에 사용했다"고 말했다. 국정원은 그러나 구체적인 도청 대상.규모 및 자료 활용처 등에 대해선 밝히지 않았다.

국정원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취임 후 '도청을 반드시 없애라'고 거듭 주문했으나 과거 관행을 완전히 탈피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국정원은 "2002년 3월 감청 담당 부서장 책임하에 (도청장비를) 분해, 소각처리했다"고 주장했다.

강주안 기자 <jooan@jongang.co.kr>
사진=김태성 기자 <tskim@joongang.co.kr>

디지털 휴대전화도 엿들었다
장비 98년 국정원서 자체 개발

국정원과 그 전신인 안기부가 1996년부터 약 6년간 휴대전화 불법 도청을 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그동안 "휴대전화 감청을 하지 않는다"거나 "디지털 휴대전화 도청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정부의 발표는 모두 거짓임이 드러났다.

국정원은 5일 "90년대 초 아날로그 휴대전화가 일반화되면서 96년 1월 이탈리아에서 감청장비 4세트를 수입, 감청업무를 시작했다"며 "99년 12월 아날로그 휴대전화 서비스가 중단될 때까지 불법 감청에도 일부 활용했다"고 발표했다. 국정원은 또 "98년 5월부터 2002년 3월까지 초보적인 수준의 디지털 휴대전화 감청장비를 자체 개발, 운용하면서 불법 감청에도 일부 사용했다"고 털어놨다.

디지털 휴대전화 도청은 ▶통신회사의 유선 중계구간 회선에 장비를 연결해 듣는 방식 ▶이동식 장비를 차에 싣고 휴대전화 사용자에 게 접근해 감청하는 방식 등을 썼다고 밝혔다.

국정원은 "유선 중계망 감청 장비는 당초 위성 이동통신이나 공항.항만 중계망을 통해 국가안보 관련 통신첩보를 수집하려 제작했다가 디지털(CDMA 방식) 휴대전화 도청에도 활용했다"고 말했다. 이동식 장비의 경우 "특정 대상자를 가까이서 추적해야 하고 휴대전화 사용자가 기지국 섹터를 옮겨가면 감청이 중단돼 효용성이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국정원은 그동안 휴대전화 도청을 부인해 온 이유에 대해 "국민의 실생활과 밀접한 휴대전화가 제한적이나마 감청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알려질 경우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몰고올까 우려됐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강주안 기자

"기지국에 감청장치 추진"
국정원 "합법감청 할 것"

국정원은 "불법 감청 문제에 관하여 저희가 확인한 진실을 국민 앞에 고백하고 용서를 구한다"며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김승규 원장은 "불법 감청은 2002년 3월 이후 완전히 근절됐다"며 "이젠 불법 감청을 할 필요도 없고 불법 감청을 할 의도 역시 없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외국의 경우 기지국에 합법적인 감청을 할 수 있는 장치를 부착하는 것이 가능하다"며 "앞으로 통신비밀보호법 시행령에 기지국 감청장치 부착이 가능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 원장은 "하지만 지금은 그런 장비가 없으며 기지국에도 감청설비가 있어야 하는데 없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은 "참여정부에서는 불법적인 도청행위가 일절 없다"고 말했다. 국정원은 불법 도청 테이프 수사 차원의 검찰 압수수색에 대해서도 "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당시 원장들 소환 불가피"
검찰 "공소시효 남아"

검찰은 5일 김대중 전 대통령 재임 동안 국정원이 벌인 불법 도.감청에 대한 본격 수사에 나섰다. 검찰 관계자는 "DJ정권 시절의 불법 도청은 통신비밀보호법의 공소시효가 끝나지 않아 관련자들에 대한 사법처리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검찰은 DJ정권 시절 도청이 이뤄진 2002년 3월 이전에 국정원장을 역임했던 이종찬.천용택.임동원.신건씨와 보고 라인에 있던 당시 실세 인사들에 대한 소환 조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검찰은 4일 천용택 전 국정원장의 서울 강남 자택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해 관련 자료를 분석하고 있다. 또 검찰은 재미동포 박인회(구속)씨에게서 불법 도청 테이프와 녹취록 등을 건네받아 방송한 이상호 MBC 기자를 5일 소환 조사한 뒤 귀가시켰다. 이학수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장은 피고발인 자격으로 9일 검찰에 출두하라는 소환통보를 받았다.

장혜수 기자 <hscha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