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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호세 카레라스 공연 취소 막을 수 없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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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김호정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반성합니다. 클래식 음악을 담당하는 기자입니다. 23일 저녁에 테너 호세 카레라스의 내한 공연이 취소된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는 68세입니다. 11세에 보이 소프라노로 데뷔했습니다. 테너, 즉 고음역 노래를 이렇게 오래 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공연을 주최한 팝커뮤니케이션의 황창선 대표는 “급성 후두염이었다”고 하더군요. 일흔을 바라보는 테너가 건강 문제로 공연을 취소한 것입니다. 주최측은 티켓값 100% 환불을 약속했습니다. 여기까지는 여느 공연 취소 스토리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24일 공연계 관계자 여러 명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기획 단계부터 문제가 있었습니다.

 우선 성악가가 이틀 연속 독무대에 서는 일은 흔치 않습니다. 몸이 악기인 성악가에게 휴식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카레라스는 22일에도 같은 무대에 섰습니다. 앞서 몇 년 카레라스 공연을 주최했던 관계자는 “연속 공연은 생각도 못 할 일”이라고 하더군요.

 또 카레라스는 22일 이미 컨디션이 안 좋았습니다. 공연장 안내 방송까지 나왔습니다. “카레라스가 감기 증세가 있다”는 내용이었죠. 그는 무대에서 기침을 했고, 인사를 제대로 마치지 못한 채 퇴장도 했습니다. 이랬는데 주최측이 23일 공연이 임박해서야 취소를 결정한 것은 석연치 않습니다.

 정상적인 공연 기획자라면 어땠을까요. 공연 횟수·일정에서 무리하지 않았을 겁니다. 또 성악가의 컨디션에 따라 공연 취소를 신속하게 결정했겠죠. 결국 23일 청중 2100여명은 30분을 영문도 모른 채 기다려야했습니다. 주최측이 그제야 취소를 통보했기 때문입니다.

 결론은 진행 미숙입니다. 문제는 티켓 가격에서도 드러납니다. 최고 44만원이었습니다. 2010년 카레라스의 서울 예술의전당 공연은 최고 25만원이었죠. 물론 이번 공연엔 소프라노도 출연했습니다. 하지만 2009년 고양 아람누리에서도 카레라스와 소프라노가 출연했고 티켓은 최고 22만원이었습니다.

 그런데 흥행마저 안됐습니다. 23일 청중 2100여명 중 유료관객은 600명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익 본 사람은 누군지 모르겠지만, 피해 본 청중은 분명히 보입니다. 그래서 반성합니다. 사후에야 문제점을 봤기 때문입니다. ‘부실한 기획’이었는데 미리 진단하지 못했습니다.

김호정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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